중국, 1300년 동안의 오해?

지난 이틀 사이에 모르는 중국인들로부터 이메일 10여통을 받았다. 모두 고구려사 문제와 관련한 내용이었다. 지안(集安)시 고구려 유적을 현장 취재한 내용과, 베이징대학의 교양 역사 교재가 고구려를 중국의 복속 정권으로 왜곡 표현하고 있다는 최근 조선일보 기사를 인터넷 중문판(中文版)으로 읽고 자신들의 견해를 밝혀온 것이었다.

A4 용지 두 장이 넘는 장문의 글을 보내온 사람도 있고, 네댓 줄 짧은 글을 보낸 이도 있지만, 결국 주장은 같았다. 고구려가 고대 중국 변방의 소수민족 정권이라는 것이다.

몇몇은 조선일보의 보도와 한국 사람들의 고구려사 문제 접근방식까지 비판했다. “소국적(小國的) 의식”이라거나, “다른 것을 포용하는 면모가 없다”고 했다. 무엇보다 한국 사람들이 “민족주의 정서가 충만해 있다”면서 고구려사 문제를 감정적으로 대하는 양 치부했다.

이들의 주장 내용은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복무하는 중국 학자들의 논리나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중국 관영언론들이 일제히 ‘고구려는 고대 중국 지방정권’이라고 주장한 논리와 똑같다. 이들 주장을 되짚어보면 그야말로 ‘내 것은 내 것, 네 것도 내 것’이라는 식의 ‘패권적 민족주의’ 색채가 짙다. 중화(中華) 중심주의 입장에서, 국가로서의 실체를 갖고 있었던 이웃 국가들을 조공·책봉 등을 이유로 들며 아예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역사인식이다. 또 현재의 중국 영토를 기준으로 그 영역 안에서 이루어진 역사는 모두 중국의 역사라는 식이다. 몽골은 독립국가로 엄존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칭기즈칸을 중국의 역사 인물인 양 하는 것도 억지다.

중국에서 고구려가 중국 역사의 일부라는 주장이 나온 것은 불과 십수년 전부터다.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1300여년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중국은 일관되게 고구려를 외국으로 인식했고, 그렇게 역사서에 기술해왔다. 수서(隋書)와 신·구당서(唐書)는 고구려를 중원의 역사와 구별해서 동이열전(東夷列傳)에 기록했고, 송사(宋史)와 명사(明史)는 아예 ‘외국열전’에 올려놓았다.

1300여년이 지난 지금 느닷없이 “고구려도 중국”이라고 주장하는 돌변에 대한 중국의 변명은 억지스럽다 못해 궁색하기까지 하다.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환구시보(環球時報)는 “과거 중국 왕조들과 역사학자들이 고구려를 한반도 정권으로 규정한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다.

아쉬운 건 중국 지식인 사회의 분위기다. 일본에서 교과서 왜곡 파동이 났을 때는 그나마 비판하고 항의하는 일본 지식인들이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선 그런 지식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1300여년간의 인식을 한 순간에 바꾸는 상황에서, 반론이 있고 논쟁도 있을 법하지만 중국의 지식인 사회는 너무나 조용하다. 이런 획일적인 분위기에서 진리보다는 정치 권력과 시류에 굴종하는 지식인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면 오류를 범하는 것일까.

물론 고구려사 문제는 일방적인 민족주의적 주장이 해결의 열쇠를 제공해주지는 못한다. 그야말로 사실(史實)에 입각하는 학문적 접근이 우선돼야 한다. 그런 다음, 해석의 차이가 발생하면 상대의 역사를 존중하며 토론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인 이해타산(利害打算)과 전략적인 고려보다 진리에 복종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조선일보 / 조중식 베이징특파원 2004-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