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과연 통일한국의 동반자인가

이라크 파병 요구 등 미국의 일방주의로 한미관계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 와중에 중국은 북핵문제를 계기로 한반도 문제에 깊숙이 개입하는 동시에, 거대해진 경제력을 무기로 고구려사를 왜곡하는 '동북공정'을 추진하는 등 또다른 패권주의의 실체를 드러내 우리를 분노케 하고 있다. 이처럼 격변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어떤 생존-발전전략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통일연구원의 조민 선임연구위원이 2일 저녁 이같은 고민에 답할 장문의 기고문을 본지에 보내왔다. 외세에 의한 분단에 이은 반세기 동안의 분단고착화에 발목잡힌 한민족의 통일과 발전을 위한 생산적 논의의 단초를 제공하는 이 글의 꼼꼼한 일독을 여러분에게 권한다. 편집자주

  
중국은 통일한국의 동반자인가?
-「도광양회」(韜光養晦)와 「유소작위」(有所作爲)의 이중주 -

  
. 중국의 대미(對美)전략: 도광양회(빛을 감추고 힘을 기른다)
  
중국은 한반도와 역사적으로 가장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온 주변 강대국으로 한반도 문제에 직간접적인 개입과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중국은 향후 한반도 문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관여와 개입정책으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중국의 역할과 대한반도 정책은 한반도의 평화 구축과 통일과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정확한 이해와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중국의 국가목표는 대개 세 단계로 접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우선 경제발전과 현대화 과정에 유리한 국제환경을 조성하는 데 역점을 두었으며, 다음 단계로는 경제발전을 통한 국력 신장을 바탕으로 미국의 패권주의와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국과 미·일의 해양세력 중심의 세력구도 형성을 저지하고 중국의 국제정치적 위상과 역할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고 하겠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대만과의 통일을 달성하면서 중화주의의 확산, 즉 동아시아의 패권을 추구하는 데 있다.
  
중국은 2002년 11월에 개최된 제16차 당대회를 통해 지도체제를 개편하였다. 장쩌민(江澤民), 주룽지(朱鎔基)를 중심으로 하는 제3세대 지도부가 퇴진하고 후진타오(胡錦濤), 원자바오(溫家寶)를 중심으로 제4세대 지도체제가 확립되면서 중국의 미래와 관련하여 대내외정책의 기본방향을 조정하였다. 제16차 당대회와 5년 만에 개최된 제10기 전국인민대표자대회(全人代 2003. 3)에서 「소강사회(小康社會)의 전면적 건설」을 발전 목표로 설정하였다. 나아가 앞으로 20년간 2000년 GDP의 4배, 연평균 경제성장률 7%대 유지, 1인당 GDP 3000달러 달성 등을 비전으로 제시하였다.
  
특히 중국지도부는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 목표를 성취하기 위해 미국과의 안정적 협력관계의 유지·발전이 더욱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말하자면 세계질서의 다극화를 추구해 나가면서도 미국 중심의 일극적 세계체제의 현실을 부정하거나 미국의 지위에 도전하지 않음으로써 미국과의 안정적인 관계유지에 마이너스 효과가 나타나지 않도록 한다는 매우 신중한 태도를 표명하였다.
  
중국의 이러한 대외정책의 기조는 사실 개혁·개방을 국가 목표로 삼았던 1980년대 이래 "빛을 감추고 밖으로 드러내지 않고 힘을 기른다"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전략적 기조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자신의 의지나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때를 기다린다는 의미의 「도광양회」는 경제발전에 전력을 기울이기 위해서는 특히 정치군사적 차원에서 미국과의 불필요한 경쟁과 마찰을 피하고 국력의 소모를 억제한다는 실리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이러한 대외전략에 앞서 일찍이 중국은 저우언라이(周恩來)가 중국-인도 공동성명(1954년 6월)에서 주창한 '평화공존 5원칙'(平和共處五項原則)을 대외정책 기조로 삼았던 시기가 있었다. '평화공존 5원칙'(주권과 상호영토 존중, 상호불가침, 상호내정불간섭, 평등˙상호이익, 평화공존)은 아시아˙아프리카 신생독립국가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비동맹외교노선의 골간이 되었다. 냉전시대 중국은 서방의 봉쇄 속에 비동맹외교를 강화하면서 강대국 중심의 국제질서를 부정하고 이를 타도하는데 주력해왔다.
  
그후 개혁·개방을 기치로 내걸었던 덩샤오핑(鄧小平) 시대에 중국은 세계로 나오면서 「도광양회」를 새로운 대외전략의 기조로 삼았다. 덩샤오핑 후계자들은 이를 충실히 지키면서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개선에 적극 나서 국제질서의 안정 속에 경제성장의 실리를 추구했다. 그러나 최근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고 국제정치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주변국을 긴장시켜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위협론'이 대두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다.
  
중국은 성장과 발전의 국가목표에 자칫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중국위협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다시 평화발전의 고양을 대내적으로 천명하고 있다. 이즈음 중국지도부는 중국의 '평화로운 발전'을 강조하면서 '평화굴기'(平和堀起)라는 새로운 전략을 들고 나왔다.
  
평화굴기는 중앙당교 부교장 출신으로 평화굴기 과제 연구개혁개방논단 이사장인 정비젠(鄭必堅)은 2003년 10월 하이난(海南)성 보아오 포럼에서 처음 거론하였다. 평화굴기의 3대 보장은 '인력자원 확보, 조화로운 사회환경, 국방건설'이다. 막강한 국방력은 평화굴기 외교와 조국 통일의 필수전제라는 입장이다. 그후, 원자바오 총리가 하버드대학 연설에서 거론(동년 12월)하면서 공식화되었다.
  
'평화굴기'(平和堀起)는 중국의 평화로운 등장을 강조하는 용어로, 이는 경제대국으로서의 중국의 등장은 바이마르공화국의 독일이나, 군국주의 일본 그리고 냉전시기의 소련의 발전과는 다르다는 점을 말하고자 하는 데 의도가 있다. 다시 말해 이들 세 나라의 경제발전의 목표는 세계를 정복하는 데 있었다면, 중국의 경제발전은 세계의 평화에 기여하는 데 있다는 말이다.
  
물론 평화로운 발전을 촉진(促進平和發展)한다는 입장의 '평화굴기'(平和堀起)는 최근 미국 사회에서 고조되고 있는 '중국위협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제시된 논리라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중국 대외정책은 국내적 과제와 국제정세의 상황에 따라 전략적인 변화를 보이면서도 자신을 곧장 드러내지 않고 어려운 시기에 칼날을 감추고 실리를 챙기는 실용주의 노선이 대외정책의 일관된 배경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여기서 힘을 기르는 동안 미국과의 소모적 경쟁관계를 회피하려는 「도광양회」의 전략적 가치가 충분히 돋보이고 있다.
  
그동안 중국을 전략적 동반자로 부르면서 북한 핵문제 등에서 협력관계를 추구해 왔던 미국은 한편으로는 중국의 급부상에 놀라고 있는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아시아 지역에서 미국의 영향력과 사활적인 장기적 이익이 중국의 역동적인 경제·외교 공세에 도전받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중국은 미국과 국력의 큰 차이를 강조하면서 '중국위협론'은 과장된 어불성설이라고 반박논리를 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비록 미국과의 관계에서는 '중국위협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도광양회」에 근간을 둔 '평화굴기'를 강조하는 입장이지만 그들이 변방으로 불렀던 주변국에 대한 대외전략은 결코 그렇지 않다.
  
Ⅱ. 중국의 변방전략: 유소작위(적극적 개입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주변국에 대한 기미(羈靡)정책을 근간으로 국력이 융성한 때에는 적극적인 관여와 개입정책을 추진하여 변방을 복속시키는 정책을 취해왔다. 중국의 변방정책은 경제발전과 국력 신장에 기반하여 주변국에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려 들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국력 신장을 바탕으로 대외관계에서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개입하여 소기의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는 점에서 「유소작위」(有所作爲) 노선이 강조될 것이다.「유소작위」는 국제관계에서 참여와 개입을 통해 지금까지 자제해왔던 목소리를 높이고 그들의 몫을 스스로 챙기면서 중국의 안보와 국익을 확대시키고자 하는 공세적인 대외정책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최근 동북아지역에서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유소작위」에 입각한 중국 대외정책의 구체적 형태는 두 방향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선 하나는 북한 핵문제 해결에 있어서 보다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관여정책으로 주변국으로부터 상당한 주목을 받고 있다. 다른 하나는 한·중 관계의 외교적 마찰을 초래하면서 한반도 문제의 핵심적 사안으로 부각되고 있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바로 그것으로,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과 관련하여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유소작위」의 측면에서 보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 과정에서 나타난 중국의 이니셔티브는 동북아지역에서 현 단계 중국의 국제정치적 역할과 정책적 의지를 반영한 것이라면, 「동북공정」을 통해 중국은 변방정책의 일환인 한반도 문제와 한·중 관계의 미래에 대한 그들의 전략적 방향과 의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다. 말하자면 중국은 대미(對美)관계에서 「도광양회」로 만면에 미소 띤 얼굴로 미국을 바라보고 있다면, 대한반도 전략 차원에서는 「유소작위」로 적극적인 관여와 개입을 천명하고 나선 상황이다.
  
Ⅲ. 「동북공정」: 중국의 대(對)한반도 전략
  
「동북공정」(東北邊疆歷史與現象系列硏究工程의 약칭)은 2002년부터 추진된 중국의 국책사업으로, "중국 국경 안에서 전개되었던 모든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만든다"는 프로젝트다. 고구려사를 비롯하여 고조선사, 발해사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왜곡하여 한반도와 중국 동북방 지역에서 활동했던 한민족의 정체성과 정통성을 부정하고 중국 변방의 역사로 편입시키는 국가 차원의 공작으로 역사 절취(竊取)로 비난받을 소지가 크다.
  
이 프로젝트는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입각하여 베이징사회과학원(변강역사지리연구중심)과 동북 3성이 공동으로 추진하는 국책사업으로 동북변강의 역사에 대한 해석과 아울러 한반도 정세변화에 따라 동북방 지역의 사태발전의 추이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대책마련에 목적이 있다. 이를 위해 향후 5년간 200억 위안(약 3조원)을 투입하여 특히, 고구려사를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하여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는 데 역점을 두고 있다.
  
그렇다면 중국은 식민사관, 황국사관에 의해 자행된 일본의 교과서 왜곡을 비난하면서, 왜 우리와의 우호관계의 훼손을 자초하고 양국간 갈등과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패권주의적 작태를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고 있을까? 중국 외교부가 최근(2004.4.8) 인터넷 홈페이지에 일본 국가개황중 약사를 뜻하는 간황(簡況)에서 일제가 한국에 대한 침략과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해낸 식민사관인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지지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한 점이 주목된다. (<연합뉴스> 2004.7.22 보도)
  
필자는 학술적 프로젝트로 포장된 「동북공정」은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의 방향과 정치적 성격을 드러내는 사업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북한 체제에 대한 전망과 한반도의 통일과 관련된 사안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다. 이를 두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 「동북공정」은, 중국은 북한이 완충지역으로 존속되기를 바라지만, 북한의 체제변화 또는 충분히 예상되는 돌발사태의 경우 한반도의 북부 지역에 대한 적극적인 관여와 개입 의지를 우회적으로 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북한 영토는 비록 중국 변방사이지만 중국의 소수민족 정권이었던 고구려의 영토로 당연히 중국의 직접적인 관여·개입사안이 된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이에 자국내 고구려의 유적을 유네스코(UNESCO)에 등재하여 세계를 향해 연고권을 주장하는 전략을 추진했던 것이다. 그와 더불어 지역주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고구려 유적을 중국사로 학습시키는 작업을 서두르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과거 자신의 연고권을 주장한다면 프랑스나 에스파니아는 과거 로마의 영역이었다는 점에서 이탈리아 역사이며, 중국사 역시 한때 원 제국을 이루었던 몽고의 역사에 편입된다. 또한 중국의 주장처럼 오늘날의 자국의 영토 내에서 이루어진 역사는 모두 자국의 역사라고 규정한다면 아메리카 대륙 인디언의 역사는 미국의 고대사나 중세사로 바라보아야 한다.
  
둘째, 한반도의 통일은 남한 중심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전제에서, 중국 동북부 지역의 조선족의 동요를 막는 한편 동북 3성 중국인들의 통일한국에 편향될 수 있는 가능성을 사전에 예방해야 하는 변방정책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역사왜곡은 동북 3성 지역의 국민통합을 위해 역사적 자긍심을 부추겨 한족(漢族) 중심의 중화주의로 결집시키려는 데에 목적을 둔 국가 차원의 기만작업인 반면, 한민족에게는 역사침략이 아닐 수 없다.
  
중국이 이러한 작업을 정부 차원에서 추진하는 데에는 고대사 해석을 둘러싼 단순한 아카데미즘의 영역과는 무관하게 한반도 통일 상황에 대비한 관여와 개입의 논리적 근거와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더욱이 2003년 조·중 국경 지역에 15만의 군대를 배치시킨 사실도 북한의 미래와 관련한 상황 변화에 대한 중국의 대한반도 전략의 일단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어느 면에서 중국은 그들의 대미전략인 「도광양회」를 통해 미국의 동아시아 지역의 문제 해결에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이 지역에서의 「유소작위」효과를 가속화하는 실리를 확대시키고 있다.
  
Ⅳ. '우리식' 이이제이(以夷制夷)
  
중국의 변방 정책은 역사적으로 중국의 대외정복사의 한 형태를 반영한다. 오늘날 중국의 영토는 청나라 건륭제 치세 하에서 단행되었던 변방 정책의 산물로 볼 수 있다. 청의 변방 정복과정에서 마지막 유목제국으로 '서부몽골'로 불렸던 준가르 한국(準噶爾 汗國 Zhungar)은 60여만 명의 인구 중 거의 절반 이상이 희생되었고(1755-57), 신장(신강) 진출(1755-58)과 연이은 버마(1768-69), 베트남(1788-89), 네팔(1790-92)과의 전쟁은 청의 팽창정책의 결과로 나타났다. 물론 중국의 성공적인 팽창은 해당 변방국의 입장에서는 피침의 역사로 기록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후 제국주의 시대 서구열강의 동아시아 침탈에 노대국 중국이 허덕이던 시대에는 팽창정책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었고 변방을 관리할 역량도 한계에 부딪히게 되었다. 특히 20세기 냉전시대 티베트 통치를 둘러싼 중국의 개입(1950년 10월)과 티베트인의 저항은 중국 변방 정책의 성격과 방향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라는 점에서 우리의 주목을 끈다.
  
한반도는 지금 중국의 변방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중국은 동쪽으로 북한, 북쪽으로 몽골·러시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 서쪽으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인도·네팔·부탄, 남쪽으로 미얀마·라오스·베트남 등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중국과 국경을 접한 이들 국가들 가운데 중국보다 부유하거나 미래 전망이 밝은 나라는 거의 없다는 점이다. 더욱이 정치적으로도 중국보다 앞섰거나 안정된 나라도 드물다. 이런 까닭에 현재까지는 한족 중심의 중화제국의 구심력 훼손이나, 변방의 특정 국가의 원심력이 심각하게 우려될만한 상태는 아니다. 그러나 통일한국의 한반도만은 예외다. 통일한국과 한민족의 경제적 번영, 정치적 민주주의, 문화적 자존, 역사적 자긍심 등은 중국 변방 정책의 새로운 인식을 촉구하는 '문제 상황'일 수도 있다.
  
중국의 대미정책은 미국과의 긴장관계를 회피하는 신중한 「도광양회」의 기조에 기반하고 있다면, 대한반도 정책은「유소작위」의 적극적인 관여·개입 정책으로 가닥을 잡았다. 중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관여와 개입을 주장하는 전통적인 변방정책의 추구가 예상되는 시기에 한국의 합리적인 대응 방안은 무엇일까? 북한의 체제전환 과정 또는 통일과정에 한반도에 미치는 중국의 영향력과 안보위협에 대해 우리의 독자적 대응 가능성과 역량 문제를 살펴보아야 한다.
  
통일한국의 대중관계는 역사적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두 방향에서 찾아볼 수 있다. 하나는 '고구려 방식'이 있다면, 다른 하나는 '조선식 대중정책'이다. 고구려는 중국에 굴하지 않고 대결 방식을 고수한 반면, 조선은 중세적 현실주의에 입각한 사대외교로 국가의 존립을 모색했다. 전자는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이 아니며, 후자의 방식도 결코 바람직한 대안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번 긴 호흡 속에서 미국 문제를 음미해보자. 만약 한국과 미국의 한·미 동맹이 심각한 수준으로 훼손된 상태이거나, 동맹관계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상황에서 과연 중화적 국제질서를 구축하려는 중국으로부터 우리의 안보와 자주권을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을 것인가? 이 경우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관여·개입을 미연에 방지하고 한반도에 대한 독자적인 통제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불식시키기가 어렵다. 물론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낙관적인 전망을 제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한·미 관계가 점점 이완되고 한국의 탈미(脫美) 경향이 높아질수록 한반도에 대한 중국 그리고 일본의 개입과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증대될 것이며 그에 따라 한반도의 안보와 평화, 번영의 미래 전망은 불투명해진다. 반세기 이상 유지해온 한·미 동맹 관계가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관여와 개입전략을 억제하고 한반도에 대한 우리의 통제력을 확대시키는 현실적 대안으로 활용될 수 있다면 한·미 관계의 의미는 보다 신중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점차 증대되고 있는 한·미 관계의 이완과 상호 불신의 극복이 선결적인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태의 악화에는 항상 미국 측에 더 많은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제의 원인에 대한 미국의 진지한 인식 부재와 몰이해가 대부분의 한국인들로 하여금 실망과 분노를 억제할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반미(反美)는 한민족의 삶과 운명에 대한 한국인의 인내심의 한계를 넘어선 미국의 일방주의적 접근방식을 거부하는 지극히 자연스런 반응의 한 형태이나, 반미가 전략적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사실도 냉엄한 현실이다.
  
어쨌든 우리는 동북아 지역에서의 미국의 전략적 이익을 이해하는 입장에서 한반도의 평화통일 과정에 미국의 긍정적인 역할을 유도해야 할 것이다. 다른 한편 미국의 존재를 한반도 평화와 통일과정에 중국의 관여와 개입을 억제시킬 수 있는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를 '우리식 이이제이(以夷制夷)' 또는 '이강제강'(以强制强)이라는 전략적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여겨진다.
  
Ⅴ. 변방국가와 손잡기: 원교근공
  
중국의 「동북공정」프로젝트에 대한 대안적 모색이 전혀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다. 물론 학술적 차원에서 한민족의 고대사에 대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연찬사업은 더욱 활발하게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중국의 「동북공정」은 문명국가로서의 양식을 포기하고 중화민족주의의 야욕을 드러내는 역사절취 행위에 불과한 것이라는 사실을 중국 변방국가에게 적극적으로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동북공정」프로젝트가 학술적 형태로 드러난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관여·개입 의도가 분명한 '정치적' 사업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우리도 보다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이는 중국의 변방정책의 약한 고리, 즉 중국의 국가통합을 저해하는 원심력으로 작용하는 티베트 또는 대만과의 외교적 관계를 강화시키는 데 있다. 이를테면 "가까운 이웃을 치기 위해 그 나라의 뒤에 있는 국가와 손잡는다"는 「원교근공」(遠交近攻) 전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일단 두 방향에서 짚어보자.
  
우선 티베트 망명 정부와의 우호관계를 모색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지금까지 한·중관계의 실리적 이해관계 속에서 티베트 망명정부의 수반인 달라이 라마의 방한을 거부해왔던 우리의 입장을 중국의 변방정책과 연계하여 재고할 수 있다. 티베트 망명 정부를 인정하지 않는 중국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국제사회에서 티베트 문제가 중국과 관련된 외교적 사안으로 부각되는 것을 거부해왔다. 티베트는 사실 중국 변방의 가장 취약한 고리로, 강압적인 복속과 한족의 사민정책을 통해 티베트 주민의 자치권 요구는 철저히 외면되고 있는 실정이다. 중국의 한반도 관여·개입 의지 드러나고 있는 지금, 우리는 중국 서쪽 변방 티베트의 억압의 역사와 티베트 민중의 호소를 들어야 한다.
  
또한 대만 문제를 떠올릴 수 있다. 두루 아디시피 대만과 오랜 전통적 우호관계를 끊고 국교를 단절한 것도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 데에 따른 선택이었다. 지금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관여·개입 의지가 명백한 상황이라면 우리는 이제 대만과의 국교 재개 의지를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다. 이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그들의 '하나의 중국' 정책의 근간을 흔드는 심대한 도전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러나 대만 문제가 중국의 통일과 관련된 중국의 문제라면, 한민족의 역사와 한반도는 한민족의 통일과 관련된 정체성과 자주권의 문제라는 점을 상호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우리의 입장은, 우리의 메시지는 중국으로 하여금 그들의 변방인 한반도와 한민족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함께 보다 '절제된' 접근 방식을 모색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중국의 여타 변방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인식 지평을 확대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에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한민족은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어느 한 편에 흡수·동화되지 않은 채 독자적 문명과 고유한 역사를 간직해왔다. 이는 세계사에서 보기 드문 사례가 아닐 수 없으며 민족적 자긍심의 원천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기로에 섰다. 그러나 한반도가 해양세력과 대륙세력 어느 한 쪽으로 급격히 편향되는 상황은 피해야 된다. 어느 일방으로 편향되거나 한쪽으로 치닫는 상황은 위험하며 민족사의 미래에 비추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균형추의 역할과 위상을 확립해 나가는 균형 감각이 필요한 때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디로 치닫고 있는가? 19세기 말 러시아의 남진을 막는 방아책(防俄策)으로 조선ㆍ중국ㆍ일본ㆍ미국과의 연합(親中結日聯美)을 주장하였던「조선책략」의 시대 상황과는 달리 지금 우리는 특정 국가를 배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며, 오히려 한반도 주변의 모든 국가와 더욱 깊은 유대와 굳건한 협력 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실정이다. 특히 여기에는 미국과의 유대의 의미를 새롭게 인식하면서 중국과 다양한 분야에서 상호 협력의 토대를 넓혀가는 한편 중국의 한반도에 대한 관여·간섭을 억제시킬 수 있는 전략적 구상이 요청된다.
  
21세기에 「한국책략」을 다시 쓴다면 그것의 요체는, '우리식 이이제이'의 입장에서 미국과 중국 사이의 균형추로서 한반도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있으며 서울과 평양의 민족공조의 방향은 바로 여기에 놓여있다는 인식의 공유가 요망된다.

<조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프레시안 2004-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