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격려방문도 도움 안되더라”

중기-대기업 R&D 임원들 여당간담회서 불만토로

“10년간 700억원을 기술개발에 투자했다. 부채까지 잔뜩 안았다. 결실이 나타났다. 세계 최초로 무세제 세탁기 기술을 개발해냈다. 그러나 대통령까지 공장을 방문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기술 상용화를 위한) 정부 지원은 감감무소식이었다. 국내엔 기술을 사줄 기업도 없었다. 결국 일본 마쓰시타와 3000억원의 매출계약을 맺었다. 최근 중국 난싱그룹으로부터는 ‘1조원을 투자하겠으니 중국으로 오라’는 권유를 받고 망설이고 있다. 기술유출은 곧 국부 유출이란 생각 때문이다.”

외국의 투자유혹 고민…정부지원정책 확 바꿔라

김희정 경원엔터프라이즈 사장의 울분섞인 고민이다. 김사장은 29일 국회에서 개최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단 주최 중·소·대기업 R&D(연구개발)임원 초청 간담회에서 우리 기술개발과 활용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지적했다. 또다른 기업의 임원은 정부의 정책에 비분강개의 울분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기업의 임원은 모두 17명. 정부의 R&D정책의 오류, 청년 실업대책의 비효율성, 바뀌지 않는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주의 행태등이 일선 기업 임원들의 목소리를 통해 거침없이 쏟아져나와 이날 간담회를 주재한 천정배 원내대표등은 답변에 쩔쩔매야 했다.물론 대기업의 횡포도 지적됐고, 기업의 R&D 투자에 대한 전향적 자세 필요성도 기업 임원들 스스로에 의해 제기됐다.

류영대 자화전자 연구소장은 “우리 지방기업은 고급인력 유치가 어렵다. 이제는 연구소를 수도권으로 옮겨야한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말했다. 류사장은 “ 어렵사리 채용한 인재도 ‘지방은 자녀 교육여건이 나쁘다’는 이유 등으로 채 1~2년도 안돼 퇴사하기가 일쑤다”면서 “청년 실업 35만-40만 얘기를 들으면 속에서 불이난다. 서울보다 두배씩 준다해도 지방의 인프라도 없고 아이들 교육시설도 없기 때문에 오지 않는다. 정부의 청년실업대책이 탁상공론이다”고 꼬집었다. 박준철 현대차 상무이사 “자동차 기술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데 같이 일하려해도 공무원들이 ‘근거가 없다’며 못하겠다고 한다”면서 “근거법을 조속히 통과시켜달라”고 주문했다. 박성주 유진로보틱스 연구소장은 “개발한 인공지능 로보트 2대를 이라크 파병부대에 무상으로 지원했다”면서 “미 국방부는 개발비도 대고 로봇은 죄다 사 주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기술개발 돈대느라 팔촌까지 망해

병역특례 인원을 늘려달라는 요구도 잇달았다. 현재는 4500명선. 원숙한 기술인력은 아니지만 이마저도 2006년부터 아예 없어진다면 기술인력 유치가 더욱 힘들어진다는 호소가 계속됐다. 송혜자 우암닷컴 사장은 “국가 인정서를 가진 기술에 대해서도 기술보증보험을 끊을 때면 보증인을 요구한다”며 “그래서 사돈의 팔촌까지 다 동원해 자금을 댔다가 패가망신하는 경우가 많다”고 톤을 높였다. 제1, 제2 금융권서 대출이 막히면 사채시장까지 기웃거리는 것은 다반사라 했다. 송사장은 “현행 기술금융 제도를 ‘확’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술정보 공유가 안되는 통에 ‘정보의 사막’에 떨어진 느낌이라는 토로도 나왔고, 한 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몇년 뒤 다른 기업이 다시 개발하는 중복투자의 폐혜, 첨단기술에만 투자하는 정부의 관행을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안병엽 정조위원장은 “인력 확보와 기술 구매문제, 금융시스템 제도 정비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했고, 천정배 대표는 “경제의 불확실성을 제거한 안정감 있는 정책을 펴겠다”고 마무리 발언을 했다.

(문화일보 2004-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