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부진이 기업 책임인가

노동만 파업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도 파업을 한다. 투자 부진에 대한 여권 일각의 ‘속내’는 그렇다. 가계부채와 신용불량자 문제로 소비가 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댈 곳은 기업밖에 없는데, 사내 유보금을 쌓아 놓고 투자를 미루는 것은 정권에 대한 ‘사보타주(태업)’라는 것이다. 최근 수출 호조에 따른 설비투자 압력과 금리, 유동성 등을 감안할 때 투자 부진은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따라서 기업이 투자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투자는 미래 경쟁력의 요체이고 또 때가 있다. 따라서 기업이 망하기로 작심하지 않는 한, 가능한 투자를 스스로 미루지 않는다. 설령 정권이 밉더라도 투자는 별개의 문제다. 투자가 ‘개혁 저지’의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리고 한국적 현실에서 기업의 정권과의 ‘힘겨루기’는 언감생심이다. 이는 세계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다. ‘자본파업론’은 정권과 기업의 불신을 증폭시킬 뿐이다. 개혁 추진과 개혁 저지의 대결 구도로 몰아붙일 일이 아니다.

최근의 투자 부진은 투자수익률과 리스크 면에서 투자가 여의치 못하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 주력 산업의 상당 부분은 세계적으로 과잉 설비를 우려해야 할 정도로 성숙 단계에 있다. 따라서 돌파구는 차세대 신산업에의 투자지만 시장 형성 등 내재적 불확실성이 큰 만큼 아직 본격적인 투자를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투자수익률보다 결정적인 투자 저해 요인은 리스크 면에서 우리의 ‘기업환경’이 매력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글로벌 시대에 자본 이동은 ‘발로 하는 투표(voting by foot)’이다. 매력적인 투자 환경을 찾아 국내 자본이 국외로 나갈 수도, 외국 자본이 국내로 들어올 수도 있다. 국내 자본이 빠져나가고 외국 자본이 국내에 둥지를 틀지 못한다면, 체감되는 ‘국내’에서의 투자는 저조할 수밖에 없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2003년 내국인의 중국 등 해외 투자는 35억달러로 전년보다 16% 늘었고 올해 1분기에만 10억달러가 나갔다. 그 가운데 중소기업의 해외 투자가 6억달러나 된다. 한편, 외국인의 국내 직접투자는 1999년 106억달러를 정점으로 급감하고 있다.

투자 부진의 원인은 기업 활동의 현금 흐름 분석을 통해 극명하게 파악할 수 있다. 올 상반기에 상장기업이 경영권 방어와 주가 부양을 위해 쏟아 부은 자금은 3조6000억원으로, 같은 기간의 설비투자액 8조3000억원의 43%를 차지한다.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이 비율은 무려 73%로 급증한다. 결국 기업들이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투자보다 재무활동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주주자본주의 확산으로 기업들의 단기 실적주의가 심해지고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주식시장의 외국인 투자 비중이 40%를 넘는 마당에, 경영권 방어에 치중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국내 대기업을 ‘역차별’하는 규제로 둘러싸여 있다.

투자의 마지막 승부처는 기업가 정신의 고양이다. 기업가 정신은 미지의 시장기회를 포착하여 선점하려는 깨어 있는 기민성(alert)이다. 기업가 정신이 고취되기 위해서는 선의의 ‘실패에 대한 관용’이 필요하다. 투자 실패에 대한 법적 책임을 넘어선, 과도한 비난과 책임이 추궁되는 환경에서 기업들의 모험 투자는 불가능하다. 실패를 기업가의 전횡과 탐욕의 결과로 몰아세우는 사회 분위기에서 투자가 활성화되기를 기대하는가?

여권의 입장에서, 경기 침체에 따른 서민의 고통은 바로 ‘자신’의 고통이다. ‘자본 파업론’은 경기 회복이 지체되는 데 따른 답답한 심정을 토로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국민도, 기업도 경제에 대한 걱정은 마찬가지다. 신뢰해야 불신을 버릴 수 있다. 글로벌 경쟁시대의 해법은 분명하다. 말이 마차를 힘차게 끌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말의 기(氣)를 살려주자.

<조동근 / 명지대 경제학 교수>

(문화일보 2004-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