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섬유 블랙홀’에 제3세계 수백만 실업

내년 다자간섬유협정 폐지 100여국 쿼터 소멸
섬유업체들 임금 싼 중국·인도로 65% 몰릴듯
방글라데시아·케냐·멕시코등 ‘사회적 재앙’ 우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 있는 한국 섬유회사 ㄷ레포츠의 공장에서 7년 동안 일해온 여성 봉제 노동자 와르미(27)는 하루 14시간씩 이 회사가 아디다스, 잰스포츠 등 미국 거대기업의 하청을 받아 미국으로 수출하는 배낭을 만들면서 한달에 약 12만원의 월급으로 다섯 식구를 부양해 왔다. 그러나 이달 초 ㄷ레포츠가 공장을 폐쇄하고 공장을 중국으로 옮길 예정이라고 발표하면서 1100여명의 동료들과 함께 실업자가 될 처지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27일 자카르타 현지취재 기사에서 ㄷ레포츠 노동자들의 운명은 전세계 섬유산업이 최신식 공장 설비와 저임 노동력을 갖추고 있는 중국으로 몰려가고 있는 가운데 제3세계 섬유 노동자들이 맞이하고 있는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보도했다. 저개발 국가들은 산업화 초기에 섬유산업 등 노동집약 산업에 의존해 경제개발의 기반을 마련하지만, 중국이 세계 섬유산업을 거의 독점하면서 경쟁력을 잃은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캄보디아, 멕시코, 네팔, 케냐, 인도네시아 등 저개발국가의 저임금 노동자 수백만명이 일자리를 위기에 처해있다.

특히 내년 1월로 예정된 다자간 섬유협정(MFA) 폐지는 제3세계 섬유산업에 직격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자간섬유협정은 일차적으로 미국과 유럽이 자국 섬유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한 국가에서 수입할 수 있는 섬유제품의 쿼터를 제한한 것이지만 이 때문에 100여개 나라들에 고루 섬유 수입쿼터가 배당됐다. <인디펜던트>는 쿼터 폐지로 미국 등의 수입업자들이 원하는 국가에서 무제한으로 수입을 할 수 있게 되면 당연히 임금이 가장 낮고 설비도 뛰어난 중국이 이 분야를 독점하게 돼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에서 대량실업으로 엄청난 사회혼란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국제섬유의류피혁노동자연합 닐 키어리 사무총장은 “이미 산업 전체가 영향을 받고 있고 대부분의 일자리가 중국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며 “중국은 현재의 능력으로도 온 세계 사람들의 옷을 공급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디펜던트>는 특히 중국은 현대화된 생산설비와 기술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국가가 관리하는 노조만이 허용되고 농촌에서 도시로 끊임없이 밀려드는 과잉 노동력 때문에 하루 1달러 수준의 저임금과 연장근로 강요 등 고용주들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돼 있어, 제3세계 국가들에서 노동환경 개선 요구에 직면한 기업들이 앞다퉈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파이낸셜 타임스>도 최근 섬유산업 시리즈를 통해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이후 중국의 섬유와 의류수출이 65억달러에서 116억달러로 두배 가까이 늘었으며, 다자간섬유협정이 폐지되면 중국이 전세계 섬유시장의 50% 이상을 점유하고 인도가 15%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중국의 섬유업계는 최근 대규모 투자에 나서고 있는 반면 총수출의 77%를 섬유산업에 의존하며 300만명 이상의 노동자가 섬유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방글라데시에서는 섬유수출이 20%만 줄어도 국가적인 재앙에 직면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겨레신문 2004-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