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고구려사 갈등 안팎

정부의 ‘조용한 외교’ 정책은 최근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으로 최대 시련기를 맞고 있다. 정부가 조심스레 대응하는 동안 중국은 고구려를 꿀꺽 삼키려는 모종의 시나리오를 차곡차곡 진행한 느낌이다.

중국 외교부는 홈페이지에서 한국역사를 소개하면서 삼국사중 고구려를 삭제했고 관영매체들은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부”라고 주장했다. 뒤늦게 정부차원의 대응이 공식선언됐지만 뾰족한 대응책은 없어 보인다. 중국은 정부까지 나서 역사왜곡을 주도하는 데 조용한 대응으로는 어림없다는 비판은 높아간다. 그러나 여전히 정부는 이같은 일이 왜 시작됐는지 분석함으로써 해법을 모색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있다.

◈ 중국 동북공정은 역사왜곡의 서막 〓 중국은 지난 94년경부터 동북3성의 역사를 새로 조명하는 ‘동북공정’ 연구프로젝트를 가동했다. 2006년까지 최종보고서가 만들어질 예정이다. 중국 정부는 왜 민간차원의 역사연구를 본격 지원하고 나섰을까. 김우준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교수 등 일부 학자는 중국의 패권주의가 부활한 것으로 해석한다. 개혁·개방 이후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지위를 상실한 사회주의를 민족주의로 대체하려 한다는 분석도 있다.

중국의 주장은 다르다. 한반도 통일이후 동북3성 지역에 대한 도전을 미리 차단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18세기 조선과 중국간 국경선 협상 당시 재해석의 여지를 남겨놓은 간도지역이 통일후 제1의 영토분쟁 대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있어 이같은 주장에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정부의 한 고위관계자는 26일 “중국의 이런 인식은 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이 여러 측면에서 위협적으로 다가가면서 현실화했다”며 동북공정과의 연관성을 지적한다. 대표적 사례로 한국의 대중국 투자가 조선족이 몰린 동북3성에 집중됐다는 점과 ‘만주는 우리땅’을 외치는 한국 관광객들의 백두산방문 행렬이 꼽힌다.

94~95년 중국에 주재했던 정부 관계자는 “중국은 한국인들이 10 여대의 버스에 ‘고토(古土)순례단’이란 플래카드를 걸고 백두산 천지를 방문, 만세를 부르는데 위협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또 한국 투자자들이 한족학교는 빼놓고 조선족학교에만 컴퓨터 등을 기증한 데서도 자극받았다고 전했다.

고구려 향수에 젖어 향후 고토회복운동이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는 인식이 중국인들 사이에 확산됐다는 설명이다. 이 때문일까 . 중국 정부는 97년 ‘조선반도형세변화’를 정부차원의 핵심 연구과제로 선정하면서 그 이유로 “일부 국가(남북한)의 역사왜곡 과 (한·중 국경지역의) 혼란조성”을 들었다.

◈ 우려되는 영토분쟁과 대응책 〓 정부 관계자는 이날 “이 정도면 중국의 역사왜곡은 사실 남북한의 움직임에 대한 공세적인 반격의 성격도 다분히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2002년 평양 일대 고구려유적지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 등재신청을 추진하자 중국은 부랴부랴 그동안 방치해온 동북3성 일대의 고구려유적을 발굴, 동시 신청한게 대표적 사례다. 중국이 향후 남북통일후 영토분쟁의 가능성에 대비하는 포석을 진행시킨 것으로 해석됐다. 조선족의 분리자치 가능성은 현실성이 결여된 시나리오로 보이지만 중국은 여전히 의구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과거 주기적으로 대륙이 분열됐던 경험을 갖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어떤 식의 분리도 용납치 않는다는게 기본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백두산 천지는 우리 조상의 기가 발원한 성지이지만 이는 똑같이 만주족에게도 성지라는 점을 의식해야한다”는 방식으로 공존의 해법을 찾고 있다. 대다수 국내 학자들도 고구려사 논쟁의 해법은 평화공존의 원칙을 세우는데 있다고 지적한다. 유럽통합에서 보듯 국경선의 의미가 퇴색하는 마당에 내땅, 네땅 따지면서 싸우기보다는 공동의 번영을 도모하자는 논리이다.

(문화일보 2004-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