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史·北인권법등 대응 역부족

탈북자 러시, 미국 하원에서 북한인권법안 통과, 일본과의 독도 영유권분쟁,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최근 한반도와 주변에서 연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심상찮다. 당장이야 북한 핵개발 문제로 뒷전에 밀려있지만 이들 이슈는 언제 한반도를 긴장의 도가니로 몰고갈지 모르는 화약고들이다.

한·중·일 3국간에 얽힌 역사논쟁은 일순간 외교분쟁으로 비화 할지 모르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정부는 이들 현안에 하나같이 ‘조용한 외교’ 정책으로 대응하고 있다. 민감한 문제를 법석떨지 않으면서 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챙긴다는 설명이다.

실제 동남아에 체류중인 탈북자 400여명의 일괄입국을 성사시키기 직전에 있는 등 특정 분야에서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는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인도주의를 조용히 실천하는 묘안으로 평가되는 측면도 있다. 북한이 고립압살책이라고 반발해온 국제사회의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에 정부가 가입하지 않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강대국들과의 이해관계가 직접적으로 충돌하는 지점에서 이같은 조용한 외교가 제대로 효력을 발휘할 수 있겠는가이다.

일본의 군사대국화, 중국의 대륙패권주의 색채가 짙어가고 미국 의회가 노골적으로 북한 붕괴를 염두에 둔 듯한 정책을 법제화하는 상황은 이 정책이 국익을 최대화하는 지혜인지, 피해의식에 젖은 수동적 굴욕외교인지 논란을 발생케 하는 대목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21일 한·일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에게 “임기중 양국간 과거사 문제를 공식의제나 쟁점으로 제기하지 않겠다”고 발언, 논란을 재발시켰다.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뼈아픈 식민역사를 지닌 한국의 대통령으로서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이라며 ‘굴욕외교’라고 비판 했다.

그러나 정부의 시각은 전혀 다르다. 외교통상부 박준우 아태국장은 26일 “노 대통령이 과거사 문제해결을 일본 정부와 국민의 몫으로 돌린 것은 우리가 도덕적 우위의 입장에서 내린 결단”이라고 옹호했다.

중국이 외교부 공식홈페이지에서 고구려사를 삭제하는 등 고구려 사의 중국사편입시도에 대한 대응도 한계에 봉착해 있다. 외교부는 중국 정부에 공식항의했지만 중국의 답변은 시원치않다. 그런데도 정부 고위관계자는 “냉정을 유지하면서 중국쪽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정책기조의 지속성을 강조했다 .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에 일일이 대꾸하는게 가치없는 것처럼 “고구려사가 한민족역사라는 엄연한 사실을 덮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대응할 수록 분란만 커지고 유리할 게 없다’는 인식에서다.

특히 통일 이후 역사논란이 영토분쟁으로 비화할 가능성이 관측 되고 동아시아의 민족주의간 충돌이 점쳐지는 터에 정부의 조용한 외교가 힘을 제대로 발휘하고 어떤 내실을 거둘 수 있을지 논란은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문화일보 2004-7-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