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을 못하겠거든 ‘조선’과 수교하자

통일을 못하는 것이 미국과 기득권층의 훼방과 반대, 그들의 눈치만 보는 정치권, 그리고 고위 정치인들의 자리 욕심 탓도 있겠지만, 수교한다고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아니니까, 통일을 못하겠거든, 수교라도 하자.

후손들은 우리 시대를 뭐라고 부를까 역사에 3한시대, 3국시대, 후3국시대 같은 것들이 있었듯이, 지금은 대한민국(한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조선)의 2국시대다. 이 두 나라는 1991년 국제연합에 동시 가입함으로써, 국제사회에서도 공인을 받은 바 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까지도 서로 제 이름 대신, 남조선과 북한으로 부르고 있다. 백제가 신라와 고구려를 '동백', '북백'으로, 신라가 백제와 고구려를 ‘서신’, ‘북신’으로, 고구려가 신라와 백제를 ‘남동고’, ‘남서고’로 불렀을까 자료를 찾지 못해 확실히 말할 수 없지만, 만에 하나 그렇게 부른 기록이 있다 쳐도, 우리는 그 시대를 세 나라를 동등하게 우리 조상들의 나라로 인정하고 있으며, 3국시대로 부른다. 지금은 한국시대나 조선시대, 남북한시대나 남북조선시대가 아니다. 폐기돼야 할 국가보안법 조문처럼 ‘1국가 1단체 시대’는 더더욱 아니다. 나는 예전에 “남조선”이나 “인민”이라는 말을 들을 때, 어려서부터 배운 대로 “호시탐탐 남침을 노리는 북괴”가 떠올라 소름이 돋은 적이 있다. 조선 사람들도 “북한”이라는 말을 들을 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나는 우리가 먼저 조선이라는 정식 국호를 불러주자고 제안한다.

물론 호칭만이 아니라, 영토도 문제다. 조선 땅까지도 한국 땅이라고 규정한 헌법은 현재는 사문화되어 있으므로 당장 고칠 필요는 없으나 언젠가는 고쳐야 한다. 일본이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우긴다고 일본 땅은 아니며, 조선 땅까지 한국 땅이라면, 만주벌판도 한국 땅이다.

나는 또 한국과 조선의 수교를 특히 강조해서 제안하고자 한다.

일본은 오늘도 36년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는커녕,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며, 자위대를 해외 파병하고, 평화 헌법마저 고쳐서 실제로 우리나라를 포함한 아시아와 세계를 다시 침략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하지만 누구도 제주도나 부산 앞바다를 최전방으로 느끼고 일본의 재침략을 두려워하며 밤잠을 설치지 않는다. 그것은 36년 일제의 일방적 만행이, 우리 민족끼리 서로 저지른 3년 전쟁 범죄보다 훨씬 덜했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우리가 철천지 원수로 여기며 살도록 강요받는 조선보다 훨씬 더 나쁘고 악랄한 나라가 일본이지만, 그런 나라와 수교를 했기 때문에, 두 나라 국민이 마음 놓고 오가고 있고, 우리가 속마음과는 달리 우방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수교 당시에는, 식민지와 전쟁 범죄를 사과도 않는 일본과, 자신들의 세계 전략에 따라 압력을 넣는 미국에 대한 반감 때문에, 수교 자체를 결사 반대하는 것이 진보 운동이었다.

그러나 일본과 수교를 해서 어정쩡한 우방이라도 된 것은 큰 다행이라고 본다. 수교하지 않았다면, “철천지 원수들”을 막기 위해, 휴전선만이 아니라, 남해 전체를 철통같이 지키기 위해, 엄청난 국방 예산을 쏟아부으면서도, 수십 년을 밤 잠 설치며 두려움에 떨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옛날 조선도 임진왜란이라는 7년 전쟁을 치룬 뒤 몇 년 안 가서 왜나라와 수교한 바 있다. 전쟁의 아픈 기억을 잊어서가 아니다. 이민족과도 수교하면서, 같은 민족끼리 수교 못할 까닭이 없다. 통일을 못하는 것이 분단으로 엄청난 이득을 챙기는 미국과 기득권 층의 훼방과 반대, 그들의 눈치만 보는 정치권, 그리고 최고 지도자 자리가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는 고위 정치인들의 자리 욕심 탓도 있겠지만, 수교한다고 자리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니까, 통일을 못하겠거든, 수교라도 하자!

<김용한 / 성공회대 외래교수>

(한겨레신문 2004-7-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