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아시아 변방으로 떨어지나

현대사회는 신문.잡지.방송.인터넷 매체 등으로 가위 '정보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다 하겠다. 나라 안팎에서 시시각각 보도되는 수많은 뉴스들이 우리 머리를 어지럽게 하면서 현대인들은 그 중에서 무엇이 우리 국가와 인류에게 참으로 중요한 사건이고 무엇이 일회용 해프닝인지 분간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세계의 많은 지식인은 21세기의 커다란 역사 흐름 속에서 앞으로 아시아가 국제무대에서 경제.군사.정치적 역할을 상대적으로 높여갈 것이라는 것을 중대한 현실로 인정하고 있다.

지난 2~3세기 동안의 세계 역사는 크게 아시아의 몰락과 서방세계의 득세로 규정지을 수 있는 데 300년 전인 1700년 아시아의 경제규모가 미국과 유럽 전체 경제를 합친 것보다 3배나 되었으며 1820년까지도 2배나 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658~1701년 인도 무굴 제국을 다스렸던 아우랑제브 황제의 연간 수입은 그 당시 프랑서에서 베르사유 궁전을 건설하고 극도의 사치와 권력을 누렸던 루이14세의 일년 세수의 열배가 넘었었다.

그러나 19세기 초부터 가속화한 아시아의 상대적 침체는 20세기 중반 그 극에 달해 1952년 아시아 경제규모는 유럽.미국 경제의 3분의 1에 불과했다. 즉 250년 사이에 아시아의 경제는 유럽.미국 경제의 3배에서 3분의 1로 추락하였다는 얘기다.

아시아의 경제가 이처럼 급감했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아시아의 영향력이 경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정치.군사.문화 등 다른 분야에까지 통틀어 하강했음을 의미하였다.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이 박력있게 전 세계로 뻗어나갈 때 아시아 여러 나라들은 우물안 개구리처럼 쇄국주의와 내란.내전.당쟁으로 세월을 보내면서 민중은 기아와 질병과 무지의 3중고를 겪어야 했음을 우리는 잘 안다.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아시아 경제는 다시 서서히 부흥하기 시작,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는 유럽.미국 경제규모의 3분의 2 정도에까지 도달했으며 앞으로 50년만 더 있으면 유럽.미국 경제와 대등한 규모에 도달할 것이 예상된다. 이러한 아시아 경제의 역사적 회복은 50년대 시작된 일본 경제의 부흥, 60년대에 시작된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 '네마리 용' 경제의 도약, 80~90년 대부터 본격화한 중국 경제의 발전과 최근의 인도 경제 재기 등으로 요약될 수 있다. 특히 중국.인도.일본 등 아시아 3대 대국의 경제발전이 21세기 아시아 중흥의 근간을 이룰 것이며 상대적으로 아시아 네마리 용의 역할은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볼 때 지난 30~40년 동안 반짝했던 하나의 각주(footnote)로 전락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이미 중국 경제의 개방과 더불어 점차 제 설자리가 좁아진 홍콩은 광저우.선전.마카오를 중심으로 한 주강 삼각주의 일부로 흡수돼 가는 과정에 있고, 대만 경제도 이미 중국 본토로의 투자 이전이 가속화하면서 산업공동화가 계속되고 있으며 결국 중국에 정치.군사.경제적으로 흡수될 날만 기다리는 형편이다.

중세기에 독립국가로 번창했던 베네치아.제노아.나폴리 등 도시국가들이 결국 이탈리아 반도에 흡수 통합됐듯, 40년 전 말레이시아 정부의 화교차별 정책에 분개해 독립국가로 떨어져 나갔던 싱가포르도 21세기에 말레이시아 경제가 계속 세계화.선진화되어 인종차별이 점차 소멸되면 다시 말레이시아에 흡수될 것으로 점쳐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아시아 네마리 용 중 하나였던 우리 한국의 장래는 어떠할까. 대만.홍콩.싱가포르가 다시 역사적 숙명이었던 주변 대국들의 일부로 흡수되듯 우리도 남북한이 통일은 되겠지만 우리나라의 역사적 숙명이었던 중국의 한 보잘 것 없는 동이(東夷 : 동쪽 오랑캐 나라)로 전락하고 말것인가. 혹은 우리 통일한국도 만주까지 뻗어나갔던 고구려의 기상을 이어받아 중국대륙의 경제발전에 과감히 참여할 것인가. 그리하여 시베리아의 자원개발을 주도하며 아시아 대륙의 중개국으로 한번 멋지게 우리 배달민족의 능력을 전 세계에 과시할 수 있을 것인가. 그에 대한 선택은 우리 스스로에게 달렸다.

<박윤식 미 조지워싱턴대 교수 국제금융학>

(중앙일보 2004-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