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협력, 중국과 토론, 세계엔 홍보”

고구려 재단 최광식 이사
“국수주의·민족해체주의, 경계해야 할 접근법”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 상임이사를 맡고 있는 최광식 교수(고려대 한국사학과)는 한·중 고구려 분쟁의 최일선에 서 있다. 한국고대사학회 회장을 맡았던 지난 2002년, 중국 동북공정에 대한 학술대회를 열어 처음으로 이 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했고, 연구재단 출범 때까지는 정부대응과 학계역량 결집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이번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바라는 그는 “국수주의와 민족해체주의 모두 경계 대상”이라며 “북한과 협력하고 중국과는 토론하며 세계 각국을 상대로 고구려사의 진실을 알리는 등 세가지 방향에서 연구재단 활동을 펼치겠다”고 말했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추진한 배경은 무엇인가.

= 첫째 변경소수민족 이탈로 이어질 우려가 있는 조선족 동요 문제, 둘째 지금의 조선족 자치구인 간도 지역 등 남북통일 이후 한·중 변경문제, 셋째 북한 지역에 대한 영유권 또는 지배권 문제다. 지금 중국은 평양 천도 이후의 고구려도 중국사의 일부라는 입장이다. 이 경우 북한 전역이 중국의 옛 영토가 된다. 과거 일본이 한반도 침략 때마다 ‘임나일본부설’을 내세웠다. 중국은 만주 뿐만이 아니라 한반도 북부에 대한 어떤 ‘개입’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 사태해결을 위해 ‘민족’ 개념을 지양하고 고대 동아시아사를 새롭게 구성하자는 지적도 있는데.

= 이상적이긴 하지만 현실적이지 않다. 민족 개념 해체의 모범으로 거론되는 유럽과 우리가 살고 있는 동아시아는 전혀 다른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다. 유럽은 19세기에 민족 개념이 성립됐지만, 우리는 12세기에 쓰여진 <삼국사기>에서 이미 고구려·백제·신라를 하나의 민족으로 인식했다. 게다가 우리는 분단으로 인해 민족국가 성립도 ‘완성’하지 못한 상태고, 서유럽은 민족국가가 안착된 경험 위에서 유럽연합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만주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는 식의 ‘국수주의적’ 접근은 곤란하다. 그러나 우리의 민족주의는 침략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방어적 민족주의다. 박정희 군부독재 시절 민족주의가 국가주의와 교묘히 결합된 경우 등을 염려하는 것은 옳지만, 지금의 문제는 ‘민족이냐 탈민족이냐’가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냐 역사왜곡이냐’의 구도 아래, 역사의 정치도구화를 비판하는 것이다. 고구려사 문제를 ‘민족개념 해체’의 관점으로 접근하면 ‘대동아공영권’이나 ‘전 아시아의 중국화’ 논리에 말려들 수밖에 없다.

­ 이 문제를 학술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을 이미 넘어선 것 아닌가.

= 중국은 애초 “학술은 학술, 정치는 정치”라는 입장을 보였는데, 우리 정부가 이를 그대로 믿었던 게 문제였다. 정부가 공식대응 방침을 정한 것은 늦었지만 잘된 일이다. 그러나 정부 대응은 그대로 하되, 학술영역에서는 지속적으로 중국 사회과학원과의 공동학술토론 등을 추진할 것이다. 우리의 이런 제안에 중국이 응하지 않는다면, 그것 자체가 중국의 주장이 논리적으로 허술하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내는 일이다.

(한겨레신문 2004-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