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년전 땅속 유물 아차산 큰불로 ‘햇빛’
남쪽의 고구려 유적은 임진강, 한강, 금강 일대에 널려 있다. 특히 한강 일대는 오랫동안 고구려와 백제, 신라와의 전쟁이 벌어진 곳이어서 유적이 많다. 바로 백제의 수부였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의 건너편인 아차산 일대에서 고구려 유적이 많이 발굴되어 주목을 받았다.

1989년 여름 아차산에 큰 산불이 났다. 그러자 여기저기 인공으로 돌을 쌓은 흔적이 뚜렷이 드러났다. 이때 자주 아차산을 오르내리던 사학자 김민수씨는 15개의 보루성터와 연결 산성의 흔적을 찾아냈다. 그는 이를 주목하여 구리문화원에 조사를 요청했다. 그는 늘 아차산에 고구려 유적이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리하여 구리문화원에서는 아차산 유적의 발굴을 위해 서울대학교 박물관에 의뢰했다. 1998년부터 아차산, 용마산, 망우산 일대에서 확인된 15개의 보루성 중에서 아차산의 두 군데 유적을 조사 발굴했다.

먼저 해발 185.8m인 아차산의 최고봉인 제4보루성과 그 아래 시루봉의 초소를 발굴했다. 이 발굴에서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바로 1,500여년 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유물들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각종 유물이 1,500점에 달했다.

한반도 지역에서 고구려 유물로는 가장 많은 유물이 발굴된 것이다. 특히 물을 저장했던 우물터는 진흙으로 단단하게 만든 구조물이 원형 그대로 드러났다. 이를 통해 고구려 군사조직이나 생활상을 알아낼 수 있는 기초자료가 되었다. 또 아차산 일대가 백제와 오래 대치하면서 최전방 기지의 보루를 곳곳에 쌓은 곳임을 확인했다.

현재 나머지 보루성들은 발굴을 하지 않고 있으며 더욱이 등산객들에게 방치되어 있다. 수많은 등산객들은 다시 덮어둔 제4보루성을 마구잡이로 짓밟고 다닌다. 또 오랫동안 헬리콥터 이·착륙 시설과 토치카 따위의 군사 시설을 만들어 두어 유적을 훼손하고 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보호시설과 사적지 지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구리시민을 중심으로 앞으로 모든 보루성을 발굴하여 복원하며 아차산 아래에 박물관 건립과 고구려 테마공원의 설립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것이 실현될 때에 고구려의 원형이 고스란히 우리 눈에 살아 들어올 것이다.

(경향신문 2004-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