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접근 막는 중국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 유적지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직후인 지난 8일 중국 국가문물국에 전화를 걸어 등재 확정된 43건의 고구려 유적 목록을 팩스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유적지 현황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국가문물국 접대실(민원실)은 정식 공문을 보내달라고 했다. 다음날 다시 <한겨레> 베이징지국 명의로 정식공문을 팩스로 보냈다. 이 공문은 국가문물국 접대실이 접수해 책임자가 ‘심의’한 뒤 12일 오전 문물보호국으로 전달된 것으로 확인됐다. 70글자도 안 되는 이 간단한 공문은 문물보호국의 책임자가 ‘비준’한 뒤 다시 국가문물국 판공실(사무처)로 전달됐다. 늦어도 13일에는 지안으로 출장갈 계획이었으나 그때까지도 국가문물국은 ‘목록’을 보내주지 않았다. 다시 독촉 전화를 걸었더니 국가문물국 판공실 직원은 “당신들이 급하다고 해서 바로 보내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일은 민감한 문제다. 아주 큰 문제다. 반드시 책임자가 심사 비준을 한 다음에야 우리가 처리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 ‘민감한 목록’은 출장을 마치고 돌아온 20일까지도 오지 않았다. 전화받는 직원 누구도 자기 성조차 밝히지 않았다. 문물보호국은 20일엔 “세계문화유산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라”고 했다. 그러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나 중국 세계문화유산위원회 홈페이지 어디에도 총목록은 없었다.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면 해당 국가는 문물 보호에 영향을 주지 않는 한 그 유적지에 대한 세계 시민의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 그러나 중국은 이미 등재가 결정된 유적지의 ‘목록’조차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는 까닭을 알 수 없는 비밀주의를 고집하는 중국이 과연 인류 공동의 자산을 함께 관리하고 누릴 자격이 있는지 한번 더 심각하게 숙고해봐야 하지 않을까. <베이징/이상수 특파원>

(한겨레신문 2004-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