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잃으면 민족생명 잃어”

“역사는 생명입니다.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생명을 잃은 것과 다름없지요.”

윤명철 박사(50)는 고구려사를 꼭 찾아와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더구나 고구려사는 우리 민족의 발원과 관련된 역사이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고구려 해양교섭사’로 학위를 받은 ‘고구려박사’로 1983년 대한해협 뗏목 탐사, 94·95년 고구려유적 기마 탐사, 96·97년 황해 뗏목 탐사, 2003년 중국에서 인천~제주도~일본으로 이어지는 뗏목탐사를 한 ‘현장 역사학자’로도 유명하다.

“중국의 동북공정(동북변강의 역사와 현상에 대한 연속 연구공정)은 동아시아의 패권자가 되려는 은밀한 수순입니다. 동아시아의 종주국 노릇을 할 근거를 미리 만들기 위해 주변 민족의 역사를 변방의 역사로 흡수하려는 거지요.”

그러면서 그는 100년 전 일본이 침략과 역사왜곡을 병행했던 예를 들었다.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일·조동조(日·朝同祖)론’, 만주를 집어삼키기 위해 ‘만선(滿鮮)사관’, 중국까지 지배하기 위한 ‘대동아공영론’을 만들어 유포했다는 것이다. 일본은 만주를 장악하기 위해 우리 민족의 역사인 발해에 대해 많은 연구를 했다. 중국이 나라를 쪼개고 집어삼킨 몽골과 티베트, 위구르의 역사를 자국 변방의 역사로 흡수한 것도 그런 연유라는 것이다.

그는 “중국이 ‘그레이트 차이나’란 표어를 내걸고 동아시아의 패권을 잡는 데 가장 중요한 지역이 만주”라고 했다. 중국이 태평양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러시아 영토가 된 연해주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해주는 만주의 일부분이고 또한 고구려 지역이다. 중국은 고구려사를 왜곡, 연해주 침탈의 역사적 명분을 쌓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화를 탈민족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말한다. 각 민족과 나라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가지고 세계화를 하지 않으면 그것은 거대한 제국주의·패권주의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다종족·다문화 국가였던 고구려가 우리 민족은 물론 동아시아권을 묶어내는 모델이 될 수 있습니다.”

윤박사는 고구려 사회가 고구려인의 정체성은 물론 유목민족을 비롯해 주변 민족의 정체성을 강화, 공동체를 다졌으며 천손(天孫)의 나라라는 자긍심까지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고구려가 우리에겐 대륙정복국가로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연구해보니 고구려는 해양과 대륙을 지배한 ‘해륙국가’였습니다.”

막강한 수군을 바탕으로 서해를 지배함으로써 중국과 백제·일본 등 동아시아지역의 물류와 문류(文流)·인류(人流)를 주도하는 허브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 우리나라가 동아시아공동체에서 해야 할 역할을 말해준다고 설명한다.

지금까지 실증사학과 같이 일제에 ‘투항했던 사관’에서 벗어나 우리 눈으로 역사를 바라봐야 한다고 했다. 고구려 산성터에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고 독립운동을 하던 단재 신채호 선생의 각오로 역사를 써야 한다고 했다. 또 외부적으로는 동아시아 제국이 연대해 중국의 패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재삼재사 강조했다.

“역사학은 미래학입니다. 역사는 과거를 들여다봄으로써 미래를 예측해 전망을 던져줘야 합니다. 고구려사를 다시 들여다볼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역사학 박사가 없는 실정. 동국대 겸임교수로 있는 그도 문학박사다. 그는 경기 고양시 일산에 있는 자신의 연구소에서 ‘광개토대왕의 국토경영전략’에 대한 논문을 쓰고 있다.

“우리 민족의 역사는 있는 그대로 들여다봐도 위대합니다. 고구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경향신문 2004-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