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칼럼] 동북아시대와 남북 과기협력

냉전이 해소되고 중국·러시아·일본 등 인접 국가들의 협력이 증가하면서 동북아 지역이 새로운 경제성장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참여정부도 이런 움직임에 편승해 지역내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며, 이를 활용해 남북 화해와 공동 번영의 새로운 기회 포착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따라서 최근들어 인접국가에서 살고 있는 동포들의 동북아 시대 남북 과학기술협력에 대한 중재 역할과 그 중요성이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남북 과학기술 협력을 볼 때 재중·일 동포들이 큰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90년대에 추진된 남북공동학술대회 대부분이 재중 동포들의 중재로 중국내에서 개최되었고, 2000년 이후에는 재일동포들의 중재로 다양한 형식의 남북과학기술협력이 태동, 발전하였다. 북한의 핵문제와 탈북자 문제, 일본인 납치문제 등을 둘러싼 동북아 정세 악화로 상당한 제약을 받고 있긴 하지만 이들의 노력으로 큰 결실을 거두고 있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북핵 회담의 진전과 북일 수교회담 재개된다는 뉴스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중국은 고구려 역사를 둘러싼 동북공정 외에도 새로운 차원의 동북삼성 경제 진흥정책을 수립하고 동해 진출로 확보를 위해 대러시아, 대북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최근 경제가 다시 살아나고 있는 일본도 자원 확보와 새로운 교통망을 개척하기 위해 동북지역 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이들 주변국들에 뒤질세라 우리 정부도 보다 새로운 차원의 동북아협력과 이와 연동되는 남북 협력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 같은 각국들의 움직임을 볼 때 남북 과학기술 협력을 더욱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동북아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한편으로는 해당국에 거주하고 있는 동포들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이들은 오래 전부터 동북아 지역의 정치경제적 판도에 영향을 받아 주변 정세와 언어, 문화에 익숙하고 상당수가 남북한에 인척이 있어 한반도 실정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냉전과 분단 장기화로 지역 정세 파악과 직접 대화에 어려움을 겪었던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은 수년 전부터 해외 동포들, 특히 대북 과학기술협력 경험이 풍부한 재일동포와 공동으로 남북과학기술협력을 추진해 큰 성과를 거두었다. 필자는 금년 7월 10, 11일 도쿄에서 열렸던 ‘남북 과학기술교류 경험과 전망’ 공동학술대회에서 남북 과학 기술교류의 방향이 제대로 잡혀 있고 또 앞으로도 괄목할 발전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확인했다. 과학기술부가 지원하는 남북과학기술협력 과제 중 절반 이상이 이런 협력을 통해 성사된 것이 이를 입증해 주는 사례일 것이다.

최근들어 북측은 이전보다 적극적으로 대남 과학기술협력 확대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쓸데없는 경쟁과 힘겨루기로 불필요한 오해를 야기해 될 일도 그르치게 한 경우도 없지 않았다. 이 같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주변국 동포들의 참여를 유도하여야 한다. 즉 남북 전문기관간의 연계 강화와 보다 많은 기관과 전문가들이 접촉할 수 있는 협력 통로와 협력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이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재일동포들의 중재하에 수차례에 걸쳐 일본, 중국, 평양 등지에서 북측의 조선과학원 관계자들과 만나 지역 내 동포들이 참여하는 남북 과학기술협력 확대 방안, 공동연구 내실화, 남북과학기술협력센터 설립, 공동 학술대회 개최, 남북 과학기술 주무부서간의 협력창구 개설, 남북과학기술협력계획의 공동 작성 등을 허심탄회하게 논의하고 많은 분야에서 인식을 공유한 바 있다. 주변 정세가 호전되고 양자가 인식을 같이 하는 분야가 넓어지고 있는 만큼 가까운 시일 내에 더욱 큰일이 성취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해외 동포들도 이를 희망하고 있고, 기꺼이 협력할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남북 모두에 호재임에 틀림없다.

<이춘근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전자신문 2004-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