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 정신’을 살리자

최근 이헌재 부총리는 한 모임에서 근래에 기업가 2세들이 엔지니어링보다는 파이낸스(재무) 쪽만 배워 기술 격차를 뚫고 나가는 힘이 부족하고 제2, 제3의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경영에 자신이 없다는 주장을 했다고 한다. 기업가 2세들의 기업가 정신 부족을 지적한 것이다. 이 부총리는 경제를 모르는 386세대와 함께 기업가의 자질 부족을 우리 경제가 우울증에 걸리게 된 원인으로 꼽았다.

2세 기업가들 가운데는 이 부총리의 지적처럼 기업가 또는 경영자로서의 결점을 지닌 인물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기업가들은 정부의 간섭이 없는 자유시장에서는 경쟁을 통해 도태되거나 자신의 결점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보완함으로써 생존경쟁에서 이겨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가 정신이 부족한 기업가가 다수여서 경제 성장의 한계를 우려할 정도라면 우리 사회의 기업가 정신의 약화가 개인 차원의 문제라기보다는 시스템 차원의 문제임을 시사한다. 사실 한 민간 경제연구소는 기업가 정신이 약화된 점을 국내 투자 부진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기업가 정신의 부족이 경제 전체 차원의 문제임을 뒷받침하는 대목이다.

기업가 정신의 약화를 초래하는 요인은 많다. 먼저, 상당수 국민들의 부(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다수의 국민은 우리나라 부자들이 부정적인 방법으로 부를 축적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반(反)기업 정서는 얼마나 큰가? 여기에 이 부총리도 지적했듯이 경제를 모르는 386세대가 국가 권력의 대부분을 장악함으로써 경제정책이 간섭주의적·복지주의적·사회주의적 성향을 지향하고 있음이 추가돼야 한다. 이러한 지향은 최근 미국의 모건스탠리증권이 정부와 여당이 시장원리에 기초한 자본주의 시스템보다는 분배에 무게를 둔 사회주의적 정책 쪽에 기울어 있지 않으냐는 의구심을 제기한 데서도 잘 나타난다. 상황이 이런데도 기업가 정신이 활발해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약화된 기업가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60년대 말, 70년대 초에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자가 반도체 산업을 처음 시작하고자 했을 때 많은 전자 업체가 강력하게 반대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만약 삼성을 제외한 전자 업체의 손을 들어준다면 반도체 산업에 규제를 가하는 것과 같아진다. 박 대통령은 전자 업체의 반대를 무릅쓰고 삼성이 반도체를 시작하는 것을 허가했다. 반도체 사례는 규제가 없는 시장, 즉 자유시장이야말로 기업가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어 경제 성장을 가져온다는 경제 원리를 입증하고 있다. 비록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만큼 당시 반도체 산업이 완전한 자유시장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현재 한국 바둑은 세계 정상이고 그 뒤를 중국이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바둑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 바둑을 한국 바둑계가 그렇게 단기간에 제패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바둑시장에 비해 한국 바둑시장이 매우 자유롭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스승과 제자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경쟁하는 곳이 바둑의 세계이니 그 자유로움을 어디에 비할 수 있겠는가? 작금에 중국 바둑의 급성장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은 애덤 스미스와 같은 사상가에 의한 정신혁명의 결과였음을 아는 이는 드물다. 다시 말하면, 산업혁명은 그 이전에 사상가에 의해 만들어진 자유시장으로 촉발된 기업가 정신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약화된 기업가 정신이 우리 경제의 우울증의 원인이라는 이 부총리의 지적은 정곡을 찌른 것처럼 보인다. 사실 현재의 북한이 직면한 절실한 문제도 기업가 정신으로 충만한 기업가의 부재에 있다. 그러나 이 부총리처럼 기업가 정신의 부족을 다분히 개인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은 적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이유로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것이다.

<전용덕 / 대구대 경제학 교수>

(문화일보 2004-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