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사(宋史) “고려가 고구려 계승”…‘중국 뿌리론’허구 드러내

‘동북공정’논리 허점은?

현도·낙랑·대방군 축출하며 성립한 독립국
책봉-조공은 고대 동아시아 일반 외교관계

중국 ‘동북공정’의 모든 연구는 영토·외교·민족적 측면에서 고구려가 ‘중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결론를 향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의 결론을 위해 각종 사료를 자의적으로 해석한 결과, 논리적 비약과 허점을 곳곳에서 드러내고 있다.

고구려는 애초 중국의 영토 안에서 시작했다=중국이 한반도 서북부에 설치한 한사군의 하나인 현도군에서 건국됐기 때문에, 고구려는 결국 중국에 복속된 나라였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고구려는 현도군에 ‘귀속’된 제후국이 아니라, 그 현도군을 ‘축출’하며 성립한 국가라는 게 우리 학계의 지적이다. 고구려의 중심부에 있던 현도군이 고구려 변경 밖으로 밀려나는 과정 자체가 초기 고구려 성립의 핵심적 배경이라는 것이다. 이후 고구려가 한반도 서북부를 장악한 것도 낙랑군과 대방군을 축출하면서 이뤄졌다. 고구려는 중국 왕조와 배타적으로 대립하며 강대국으로서의 위상을 세워갔던 것이다.

◇고구려는 중국과 책봉-조공 관계로 맺어진 주종관계였다? = 고구려가 중국 왕조로부터 책봉을 받고 대신 조공을 바친 일종의 ‘종속국’이었다는 게 중국의 입장이다. 그러나 책봉-조공은 ‘상하관계’의 표현이 아니라, 고대 동아시아 전체에 적용된 국가간 외교의 일반적 형식이었다는 게 우리 학계의 반박이다.

같은 맥락에서 백제·신라 등이 중국과 맺었던 책봉-조공 관계도 이해할 수 있다. 중국의 주장에 충실하자면, 백제·신라를 비롯해 고대 동아시아 대부분의 국가가 중국의 지방정권이라는 ‘논리적 비약’이 발생한다. 책봉-조공 관계를 근거로 고구려사를 편입시킨 중국이 신라·백제를 한반도의 역사로 인정하는 ‘자가당착’에 빠진 것도 이때문이다.

◇고구려와 수·당의 전쟁은 중국의 내전이다? =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부였던 만큼 수·당과 벌였던 전쟁도 통일 중국을 건설하기 위한 ‘국내전’이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당시 고구려는 만주 전체와 한반도 중부 이북을 장악한 ‘정복국가’이자 중국의 각 왕조와 대결한 ‘독립국가’였다. 수나라의 중국 통일로 ‘다극 질서’가 무너졌고, 이 때문에 기왕의 강대국인 고구려와 신흥 통일국가인 수나라의 전면 충돌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고구려가 수세적 방어전을 선택하는 대신, 요서 지역을 먼저 공격해 16년에 걸친 전면전을 감수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이 내전이라고 주장하는 두 차례의 전쟁은 당시 동아시아 전역을 뒤흔든 ‘국제전’이었던 것이다.

◇고구려와 고려는 아무 관계가 없다? = 중국은 고구려와 고려가 족속이 다른 별개의 국가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려는 고구려의 옛 땅에 세워지지 않았고 그 주민도 고구려인 중심이 아니며 신라의 정통성을 계승한 국가이므로, 중국 역사에 존재한 고구려와는 전혀 다른 국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 역사책인 <송사(宋史)> 고려 열전에서 “고려는 본래 고구려라고 한다”며 고려와 고구려를 동일시 하는 등 각종 중국 역사서에서조차 고구려가 중국과는 다른 나라이며, 고려가 이를 계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무엇보다 고려의 건국과정 및 대외정책이 중국 쪽 주장을 일축한다. 국호를 고려라고 정한 것 자체가 고구려를 계승하는 국가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려는 의도였고, 건국 직후부터 추진한 북진정책도 고구려의 옛 땅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었다. 거란 장군 소손녕과의 담판에서 고려의 서희가 “고구려의 옛 땅을 차지해 나라 이름을 고려라 했고, 원래 고구려 땅의 경계를 따지자면 도리어 요가 고려의 영토를 침식하는 것”이라고 따져 거란의 침입을 물리친 일은 너무도 유명하다.

◇고구려를 건국한 민족은 중국 민족이다? = 고조선은 양이·예인에서 비롯됐고, 고구려는 고이·한인 등에서 비롯돼, 각각 한반도 역사와 중국의 역사로 이어진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그 근거로 삼고 있는 역사서인 <일주서(逸周書)>는 사실관계의 오류가 많은 위서(僞書)로 평가받고 있어, 중국 쪽 주장의 결정적 결함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 학계는 고조선 이래 흩어져 있던 예맥족을 중심으로, 말갈족, 거란족과 한반도 남부의 한족을 흡수해 만들어진 것이 고구려라고 밝히고 있다. 고구려의 주류를 이룬 예맥족은 훗날 삼국통일을 계기로 백제인·신라인과 어우러져 한민족을 형성하게 된다. <도움말 주신 분 / 임기환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위원>

(한겨레신문 2004-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