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패권주의 다시 깨어난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과 동북아 긴장①

고구려사를 둘러싼 긴장이 한-중 간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중국 정부는 고구려사 편입 의도를 노골화했고, 우리도 정부 차원의 대응을 공식 선언했다. 중국의 패권주의적 역사왜곡이라는 비판 속에 동북아시아 평화를 위한 지혜로운 대응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높다. 4회에 걸쳐 고구려사 분쟁을 둘러싼 현안과 쟁점을 유적지 현지 르포와 함께 긴급점검하고,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한다.

“변경지역 전략적 중요” 동북공정 착수
내년 역사교과서 왜곡땐 외교갈등 증폭

중국이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에 끼워넣었다. 학술적 연구단계를 지나 구체적인 정치·외교·문화 정책을 통해 이를 안팎에 알리고 있다.

중국내 고구려 유적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의 고구려사 삭제, 관영매체들의 고구려사 집중 보도 등이 모두 최근 한달 사이에 일어나거나 확인됐다. 새단장을 끝낸 중국내 고구려 유적 지역에서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부”라는 현지 안내원의 ‘역사 선전작업’까지 본격화했다.(<한겨레> 17일치 1면) 사태는 앞으로 더욱 긴박하게 흘러갈 것이 확실시된다. 고조선에 대한 중국 정부 주도의 역사 연구는 고구려사에 이은 ‘2차 역사왜곡’ 파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고대 동아시아사 전반에 대한 중국의 역사 교과서 개편작업도 2005년으로 다가왔다. 간도지역을 포함한 한-중 간 국경 지대에 대한 ‘동북공정’ 프로젝트는 2006년까지 최종 보고서를 제출할 예정이다.

일본과 미국의 패권주의에만 익숙한 우리에게 중국의 이런 변화는 당혹스럽다. “한민족의 역사를 줄기차게 괴롭혔던 중국의 패권주의가 1세기 만에 다시 한반도에 직접 영향을 주는 사태가 발생”(김우준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교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관점은 조금 다르다. “…최근 10여년간 동북 변경지역은 매우 중요한 전략적 지위를 지니게 되었다. … 일부 국가의 연구기관과 학자들이 의도적으로 역사관계 등의 사실을 왜곡했고, 일부 정치가는 정치적 목적으로 여러 잘못된 이론을 공개적으로 퍼뜨리고 혼란을 조성했다.”(중국사회과학원 변강사지연구중심의 홈페이지에서 발췌) 1983년부터 소수민족 및 변경문제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지 10여년이 지난 1997년, 갑자기 ‘조선반도 형세변화’를 정부 차원의 핵심 연구과제로 선정한 이유가 ‘일부 국가(남·북한)의 (고구려)역사왜곡과 (한-중 국경지역의) 혼란조성’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고구려사에 대한 중국의 관심은 55개 소수민족의 ‘통합’이라는 기왕의 정책기조에서 출발한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90년대 이후 고구려에 대한 남·북한의 경쟁적 연구가 동북 3성 지역의 조선족 ‘이탈’에 대한 중국 정부의 우려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동북 3성 지역의 ‘전략적 지위’에 대한 중국의 정치적 의도와 패권주의적 접근이 자리하고 있다는 게 우리 학계의 비판이다.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은 지난 12일 공식성명을 통해 “고구려가 한국의 역사이고 당당한 고대 독립국가였음을 부정한 중국 정부나 언론의 입장은 역사의 정통과 맥락을 왜곡하는 반역사적인 내용”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최광식 고구려연구재단 상임이사는 “기왕의 문헌사료는 물론이고 추가로 발굴되는 고구려 관련 유적·유물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를 통해 중국의 역사왜곡을 하나하나 반박하는 탄탄한 논리를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들이 패권경쟁에 몰두해 있을 때, 우리는 평화공존이라는 깃발로 동북아 중심국가의 지위를 차지해야 한다”(이신철 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는 제안도 있다. ‘고구려사 분쟁’을 국가적인 대외전략 차원에서 고민하자는 이야기다. 이제 고구려는 21세기 동북아시아의 ‘평화적 재편’과 ‘패권적 갈등’의 갈림길에 서 있는 정치적 화두다.

(한겨레신문 2004-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