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해전술’ 연구 맞설 남북 공동대응 시급

내달 평양 한국학대회 관심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응하는 국내 학계의 분위기는 긴박하다. 중국이 2002년부터 5개년 계획의 동북공정을 정부 주도로 시행하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지난 3월에야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을 설립해 대응체제를 갖췄다.

학계가 주도하고 정부가 지원하는 독립재단법인 형태의 고구려연구재단은 그 ‘의욕’에도 불구하고,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재단 관계자는 “재단 설립 자체가 다소 늦은 감이 있고, 학술 지원과 별개로 정부 차원의 외교적 대응도 반박자씩 늦고 있다”며 “최근까지도 우리 정부의 입장은 이 문제를 ‘학술적으로 풀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미 학술적 연구단계를 지나 정부정책 수립과 그 집행 국면으로 넘어간 중국에 비해, 우리는 이제 겨우 첫걸음을 내디뎠고 그나마도 ‘학계 역량’에 기대는 비중이 크다는 것이다.

이를 감당해낼 국내 연구인력은 턱없이 부족하다. 고구려사를 전공한 박사 학위 소지자가 국내를 통틀어 14명에 불과하고, 대부분 1990년대 이후 학위를 받은 ‘젊은 학자’들이다. 분단 이후 북한이 고구려, 남한이 신라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던 학문 풍토와 각종 사료와 유물·유적 자체가 북한과 중국에 집중돼 있어 최근까지도 ‘접근’ 자체가 어려웠던 결과다. 이 때문에 고구려사 왜곡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온 중진급 사학자들이 재단의 주축을 이뤘지만, 수백명의 연구자들이 달려든 중국의 ‘인해전술’이 주는 압박은 여전하다.

남북 공동대응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백짓장도 맞들어야 할 판’에 고구려사를 ‘국가 차원’에서 연구해온 북한의 풍부한 연구 성과가 더없이 간절한 것이다. 그러나 국내 학자들이 전하는 북쪽의 분위기는 실망스럽다. 미국의 위협과 핵문제 해결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북한이 6자 회담을 주도하고 있는 중국에 대한 공식 대응을 꺼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의 역사 왜곡은 북한이, 중국의 역사 왜곡은 남한이 맡자”는 ‘역할분담론’이 북한의 입장이라는 게 정설이다.

다만 다음달 3일부터 7일까지 평양 사회과학원에서 열리는 제2차 국제한국학대회에서 남북 학자들이 사상 처음으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입장을 한자리에서 밝힐 것으로 보여, 이를 계기로 남북 공동대응 체제가 마련될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안팎의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문제를 떠맡은 고구려연구재단의 활동방향은 비교적 올바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고구려사 뿐만이 아니라, 고조선과 발해 등 한국 고대사와 고대 동아시아사 전체를 종합적으로 연구해, ‘국수주의적’ 접근 대신 ‘평화 구축’을 위한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인식을 모색하겠다는 게 이 재단의 목표다.

(한겨레신문 2004-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