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구려 역사왜곡 본격화

“고구려는 중국 지방정부”유적지 해설원 집단교육
전문서적까지 판매…박물관도 같은 설명

압록강 중류쪽 건너 지안(집안·국내성터) 일대 고구려 유적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 중국 당국이 지난 2일 유적지를 재공개하면서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기 위한 역사 왜곡을 유적지 현장을 중심으로 조직적이고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지난 1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확정된 43건의 고구려 유적지 가운데 42건을 보유하고 있는 중국 지린성 지안시는 장군총·호태왕비(광개토대왕비)·태왕릉(광개토대왕릉)·환도산성 등 주요 유적지에 안내·설명을 맡는 해설원들을 집단학습을 거쳐 새로 배치했으며, 왜곡된 사실을 담은 전문서적까지 찍어 팔고 있는 사실이 16일 확인됐다. 이날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고구려는 중국 중원 정권과 예속관계에 있었던 지방정부”라는 등의 왜곡된 내용을 전달하고 있던 지안의 한 해설원은 “고구려와 현재의 한국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중국인 관광객의 물음에 “고구려와 한국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건 역사적인 오해”이며 “한국은 신라와 관계가 있을 뿐 고구려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고 답변했다.

또 지난 2일 다시 문을 연 지안시 박물관도 고구려는 “중국의 지방정권”이며 “중국 고대 소수민족의 하나”라고 설명하는 등 고구려사를 중국사의 일부로 편입시키기 위한 중국 정부의 ‘동북공정’을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지의 해설원들은 유적지에 배치되기 전 지안시 문물국의 집체학습에 참가했으며, 양춘지·친셩양 등이 엮은 <고구려 역사지식 문답> 등의 책자를 통해 고구려 역사에 대한 왜곡된 지식을 체계적으로 전달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지안의 모든 고구려 유적지에서 팔고 있는 이 책은 ‘동북공정’ 방침을 충실하게 따르는 교본으로 △고구려는 중국의 예속정권이고 △수나라 양제의 고구려 ‘정벌’은 침략전쟁이 아니라 “중앙정권의 지방할거 정권에 대한 통일전쟁”이며 △고구려와 고려는 계승관계에 있지 않고 △기자조선·위만조선과 오늘날의 조선(북한) 또한 아무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은 또 신라가 고구려 멸망 뒤 추진한 통일전쟁 과정은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있다.

이런 사실은 중국 정부가 고구려 유적지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후에 ‘동북공정’을 더욱 체계적이고 본격적으로 진행해 왔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에 등재된 유적지가 고구려의 ‘후방’인 지안 일대에 집중된 것도 중국 정부의 의도가 개입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고구려가 수·당 등 중국 정권과 첨예하게 대립한 요동지역(오늘날 랴오양 일대)에 남아 있는 백암산성(중국이름 옌저우산성)의 경우 돌로 쌓아 만든 고구려 성곽을 거의 완전하게 보여주는 보존가치 높은 유물임에도 ‘고구려의 옛성’이라는 안내문 하나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역사학자 이이화씨는 “요동 일대의 고구려 유적지를 세계문화유산에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고구려와 중국 정권의 투쟁을 의도적으로 무시하려는 중국 정부의 속셈”이라며, “고구려 연구가 남북한과 중국·일본에서 충분히 진행된 지금 이 문제는 더 학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중국 정부의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편, 홍콩의 친중국계 신문 <대공보>는 15일 이례적으로 홍콩 <봉황위성 텔레비전>이 보도한 한-중 간의 고구려사 논쟁을 전하면서 이 문제가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방을 둘러싼 중국과 남북한 세 나라의 ‘더욱 광범한 전쟁’의 첫단계”라고 보도했다.

(한겨레신문 2004-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