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옴부즈만] ‘분단 모순’을 넘으려면

백제는 계백 장군의 5,000 결사대가 황산벌을 피로 물들이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들을 ‘삼국 통일의 걸림돌’이라고 하고 반대편의 김유신 장군을 향해 ‘동족을 살상한 자’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미국인들은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랜트 장군 못지 않게 남부군의 리 장군을 존경한다. 자신의 선조들이 남부군으로 참전한 것에 대해서도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황산벌에서, 게티스버그에서 죽고 죽인 자 모두가 역사의 주역이지만, 승자와 패자를 요구하는 냉혹한 역사적 현실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역사가 가지는 풍요함은, 승자와 더불어 처연히 죽어간 아름다운 패자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전쟁에 정당한 전쟁은 없고 필요한 전쟁만이 있을 뿐이다. 히틀러는 자신의 정당성을 내세우며 세계대전을 일으켰지만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통일을 위해 필요한 전쟁을 했다. 황산벌과 게티스버그의 전투는 정당하진 않지만 필요한 전쟁이었다. 물론 필요하지도 정당하지도 않은 전쟁이 더 많이 존재했던 것이 인류의 비극이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계백과 김유신 중 누가 남이고 나이며, 누가 선이고 악이었다고 규정할 수 있을까.

우리의 분단상황은 냉혹한 현실을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주적개념, 그리고 보수와 진보라는 스펙트럼까지 공동체적 틀 안에서 수용하기 힘든 난제들을 안겨주고 있다. ‘분단모순’이 얽어놓은 질곡의 고리를 단절하지 않은 채 사회적 합의와 평화의 길은 요원하다. 분단을 얘기할 때 우리는 강대국의 책임을 말한다. 하지만 과연 분단모순에 대한 책임이 우리는 없는 것인지. 모스크바 3상회의에서 결정된 것은 ‘정부수립까지 최고 5년간의 신탁통치’였다. 그것은 당시 국제정세에 비춰보면 합리적인 제안으로 보여진다. 문제가 된 기간도 ‘최고 5년’으로 신축적이었다. 그런데도 일부 언론의 왜곡보도와 민족감정을 자극하는 극단적 분열책으로 결국 분단모순을 피할 수 있었던 기회를 놓쳤다.

반면 2차대전 전범국 중 하나인 오스트리아는 분단되지 않았다. 좌우정파가 단결하여 단일 정부수립을 고수했기 때문이다. 그들보다 훨씬 자유롭고 자주적인 의사가 관철될 수 있었던 우리가 분단모순을 초래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례다.

분단모순을 궁극적으로 넘는 길은 통일이 아니면, 두개의 독립국가 수립 말고는 없다. 후자는 우리 선조에 대한 죄악이며, 후손들에 대한 도리도 아닐 것이다. 답은 통일밖에 없다. 문제는 과정이다. 과거 찬탁과 반탁도 모두 민족과 국가를 위한다는 대의명분에 있어선 차이가 없었다. 해법은 절대적으로 옳지도, 그르지도 않은 현실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데 있다.

모스크바 3상회의의 진실을 외면하는 일이 거듭된다면, 분단모순은 영원히 극복할 수 없는 사슬로 남게 될 것이다. 중국은 지금 남한은 신라후손, 북한은 백제후손이며 고구려는 대중화민족의 일부라고 주장하고 있다. 분단된 땅에서조차 서로에게 적대적일 만큼 여유로운 때가 아니다. 우리가 서로의 주장을 배척이 아닌 이해와 합의의 도출을 위한 장으로 가져올 수 있을 때만이 분단모순을 넘어서게 될 것이다. <장상록>

(경향신문 2004-7-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