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차원 접근하자더니 중국 ‘신사협정’ 깨

외교부 일단 강경대응, 외교마찰 확대엔 신중

고구려사 문제가 한국과 중국의 정부간 현안으로 번지고 있다.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이른바 동북공정 문제가 불거진 이후 두 나라는 이 문제를 학술 차원에서 다루기로 ‘신사협정’을 맺었으나, 이제는 공식 외교채널을 통해 항의와 해명을 주고 받는 상황으로 발전했다.

정부는 이런 상황 악화의 책임을 중국 정부에 돌리고 있다.

관영 매체인 <신화통신>을 통해 고구려를 중국의 지방정권으로 규정하더니, 급기야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서기 1세기를 전후해 한반도에 출현한 세 정권 가운데서 고구려를 삭제함으로써 고구려사 논쟁을 학술 차원에서 관리한다는 ‘신사협정’을 깼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2월 왕이 외교부 부부장이 방한했을 때 고구려사 문제를 학술 차원에서 다루자고 제안했고, 정부도 이에 합의한 바 있다.

정부는 일단 강경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13일 김하중 주중대사를 통해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 명의의 항의를 중국 당국에 전달한 데 이어, 14일에는 리빈 주한 중국대사를 외교부로 불러들여 경위를 따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우리 정부의 입장은 한마디로 ‘엄중한 항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며 “이런 자세는 중국 정부가 납득할만한 조처를 내놓을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외교부가 그동안 문화외교국에서 다뤄온 고구려사 문제를 아시아태평양국으로 넘긴 것도 이런 정부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 특정 사안이 해당 국가에 대한 정책을 총괄하는 지역국으로 넘어갔다는 것은 그 사안을 둘러싼 정부간 협상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는 이 문제가 한­중간 첨예한 외교마찰로 발전하는 상황은 원하지 않고 있다.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당위와 중국의 전향적인 조처를 이끌어낼 수 있는 수단이 없다는 현실 속에서 고민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실제 중국 정부가 뚜렷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시간을 끌 경우, 우리 정부로서는 마땅히 대처할 방법이 없다. 중국은 지난 2000년 한­중 마늘협상 때도 지연전술을 펼쳐 우리 협상단을 지치게 한 적이 있다.

하지만 현재로선 중국 정부도 고구려사 문제가 한­중 관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은 바라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4일 외교부에 불려온 리빈 대사가 ‘지혜’를 언급한 데서도 그런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이 문제가 확대되는 것은 두 나라 모두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한겨레신문 2004-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