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 티베트 관련
티베트 독립운동
티베트는 13세기 이후 중국의 통치와 영국의 영향을 번갈아 가며 받아 왔다.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중국은 티베트를 떠나게 되었고, 이후 1950년까지 티베트는 북경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았다. 그러나, 1914년 소위
맥마흔(McMahon) 라인이 히말라야 산맥 분수령에 설정되어 영국령인 인도와 티베트간의 국경선으로 간주되었는데, 영국은 동 라인의 서쪽까지만
행정권을 행사하여 1949년 10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가 수립될 당시 중국은 티베트(서장)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많은 근거를 갖고
있었다.
중국은 한국전쟁 개입과 유사한 시점인 1950년 10월 인민해방군을 동원, 티베트를 점령하였다. 당시 티베트인들은 유엔,
인도, 영국 등에 지지를 호소하며 저항하였으나 중과부적이었다. 이후 티베트는 1951년 5월 서장자치구로 통합되었고, 1954년 중국·인도간
협정에서 인도는 티베트에 대한 중국의 통치권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1959년 3월 티베트에서는 중국의 티베트 점령을 반대하는 대규모 폭동이
발생하여 달라이 라마는 자치정부 관리 및 추종자 약 1,000명과 함께 인도로 망명하여 후에 임시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동 폭동으로 인해 약
4만명의 티베트인이 사망하고, 동년 티베트 중부지역에서만 8만 7천명이 추가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티베트의
자치/독립운동은 달라이 라마가 이끄는 망명정부의 대유엔, 미국, 유럽 활동 등 국제적인 지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미국은 티베트
문제를 중국의 민주주의, 인권문제에 포함시켜 미국의 대중국 정책에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티베트(서장)지역 에 대한 영토 주권 및
중국내 기타 지역(신강, 내몽고 등) 소수민족에의 영향을 고려, 기존의 강경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 티베트(서장) 자치구: 면적 122만 8400평방km, 인구 252만명, 성도는 라싸, 동 니켈 마그네사이트 금 등 풍부한
천연광물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나 미개발 상태, GDP 103억 위엔(1인당 4,082 위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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