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역사현장을가다](下)‘남의유산’이용 관광산업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지정으로 중국 지린성 지안(集安)은 요즘 잔칫집 분위기다. 거리 곳곳에선 경축 환영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있다. 지난 9일 오전, 고급 승용차와 택시·대형 버스 등 300여대가 도심에서 경축 카퍼레이드 행사를 벌여 23만명의 시민들을 들뜨게 하기도 했다. 지안시는 오는 20일 대대적인 경축 축제를 벌이기로 하고 중국 전역에서 3만명의 인사들을 초청, 시내 숙박업소는 모두 동이 난 상태다.

지안에 들어서려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국립공원 오녀봉(五女峰)은 현재 왕복 2차선 도로 아스팔트 포장 공사의 마무리 작업이 한창이다. 대관령의 아흔아홉굽이를 연상시키는 오녀봉을 관통하는 터널 공사도 한창이다. 현지인들은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퉁화(通化)에 건설 중인 공항이 완공되면 외지인들의 지안 나들이가 한층 쉬워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안은 ‘남의 유산’인 고구려 유적을 이용해 관광산업에 경제발전의 계기를 마련하려는 인상이었다.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한 바가지 상술도 엿보였다. 도심에 아파트가 여러 동 들어선 국내성터를 제외하고는 대다수 유적들이 시설 정비공사를 했다는 이유로 입장료를 받고 있었다. 한번 들어갈 때마다 30위안(약 4,500원), 아니면 50위안(약 7,500원)을 받았다.

태왕릉과 광개토왕비의 경우 바로 지척에 있는 데도 30위안씩의 입장료를 별도로 받는다. 유적지에서 만난 한 일본인 관광객이 안내원에게 일본은 대부분 유적지가 무료인 반면 사회주의국가인 중국에서 유적지마다 돈을 받는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었다. 안내원의 대답이 ‘걸작’이다. “그것은 일본이 자본주의 국가이고,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란다.

그동안 개점 휴업을 했던 관광업계도 기지개를 켰다. 여행사의 한 관계자는 “지난 1년 동안 일손을 놓았다”며 “최근들어 재개장 소식이 전해지면서 한국 손님들의 문의 전화가 많다”고 했다. 지안에서 가장 큰 국제여행사의 경우 한국 관광객이 2,000명 이상 예약을 한 상태다.

문화유산 지정을 계기로 중국 사람들도 고구려 역사를 새롭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장군총에서 만난 퉁화의 한 여중생은 “두번째 장군총을 찾았다”며 “처음 왔을 때는 뭐가 뭔지 몰랐지만 세계유산이 된 고구려 유적의 의미를 살피기 위해 다시 찾았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한국인이 찾아온 것이 못내 신기한 듯 “한국 사람이 왜 ‘우리’ 고구려 유적을 찾느냐”는 어이없는 질문을 했다.

이런 오해는 동북공정(東北工程)이라는 중국의 주도면밀한 작업의 결과다. 동북공정의 이론적 바탕을 제공한 겅톄화(耿鐵華) 퉁화사범학원(대학) 교수는 “고구려가 평양으로 천도를 했더라도 고구려는 중국의 왕조가 관할하던 지방정권”이라는 등 고구려의 원류를 중원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중국 당국이 학생들이나 인민들에게 ‘고구려는 중국 것’이라는 세뇌교육을 계속할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벤트 성격의 행사보다는 역사 왜곡을 일삼으려는 중국 당국의 노력에 차근차근하게 대처해야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압록강변에서 우리의 무관심으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 대신 ‘이국유사’와 ‘이국사기’를 후손들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경향신문 2004-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