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천문관측술 당대 최고수준

북한과 중국에 산재해 있는 고구려 유적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나란히 오름에 따라 고구려 고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에 지정된 고구려 고분 가운데 천문벽화가 다른 어느 고분에 비해 우수해 과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다. 고구려연구재단의 김일권 박사는 최근 열린 제10회 고구려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한 논문인 ‘벽화천문도를 통해 본 고구려의 정체성’을 통해 “고구려인들은 중국과 다른 독자적인 천문체계를 갖고 있었으며 중국에 천문지식을 수출한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천문학 관점에서 볼 때 고구려는 중국의 부속국가가 아니라 별도의 독립국가였으며 세계적으로도 우수한 천문관측기술을 갖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고구려인들은 양적으로, 질적으로 우수한 별 그림을 고분에 남겨놓았다. 4~7세기 약 300년동안 만들어진 103기의 벽화고분 중에 별자리 그림이 있는 것이 24기다.

반면 중국은 위·진·남북조, 수·당시대 700년동안 86기의 벽화고분이 있고 이중 16기에만 별 그림이 있다.

가장 다채로운 별자리를 담고 있는 것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북한 평남 남포시에 있는 덕흥리 고분(408년)이다. 이 고분은 들어가는 전실(앞방)의 벽에 수성, 목성, 토성 등 행성과 은하수, 북두칠성, 카시오페이아, 오리온자리 등 오늘날의 천문학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천체들이 담겨 있다.

무덤에 들어서는 입구쪽 남벽에는 은하수가 흐르고 견우와 직녀가 강을 마주보고 서 있다. 남쪽은 화성이 주도하며 남두육성(南斗六星), 즉 궁수자리가 자리잡고 있다. 맞은편 북벽에는 토성과 북두칠성(北斗七星)이 뚜렷이 보인다. 북두칠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4번째 별의 크기가 7개 중에 가장 작게 그려져 있는데 실제 이 별은 겉보기등급이 3.31등급으로 다른 것에 비해 가장 어두운 관측 사실과 부합한다.

또 꼬리 부분에는 8번째 별인 ‘보성(輔星)’이 자리잡고 있다. 보성은 아랍권에서 ‘알코르(Alcor)’라고 불리는 별이다.

김박사는 “고구려인들이 우수한 관측기법을 갖고 있었고 이 사실에 바탕해 무덤 벽화를 그렸음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덕흥리고분보다 160년 후에 만들어진 중국 남북조 시대(북제)의 ‘도귀’라는 사람의 묘(571년)에 북두칠성과 남두육성이 북, 남의 방위를 나타내고 있어 고구려의 별자리가 중국으로 전승된 것으로 풀이된다.

서벽에는 서양의 카시오페이아 별자리로 여겨지는 W자 모양의 5성 별자리가 있고 왕관자리라고 생각되는 염주 모양의 7성 별자리가 있다.

동벽에는 케페우스 별자리 모양을 띤 ㅅ자 모양의 5성 별자리가 있다. 이들 별자리는 중국 천문도에 없는 고구려 고유의 별자리다.

고구려 고분에서 별은 모두 원형으로 그려져 있는데 현대 천문학에서 천체를 모두 구형으로 보는 것과 비교하면 흥미롭다. 또 서벽과 동벽에는 각각 금성과 목성이 자리하고 있다.

그외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고분 중 중국에 있는 씨름무덤, 춤무덤, 사신무덤(통구사신총), 다섯무덤 4·5호 등에 일직선 형태의 북극3성좌가 뚜렷하게 그려져 있다.

북극3성이란 북극성을 표시하기 위해 이웃하는 별자리를 연결시켜놓은 것이다. 만약 고구려가 중국의 부속국가였다면 중국을 따라 5성좌나 4성좌로 그려야 한다고 김박사는 설명했다.

또 북한 평양에 있는 진파리 4호 고분에는 28수 별자리를 완전하게 그린 금박천문도가 있어 동아시아 유물천문도 중 단연 돋보인다.

김박사는 “이집트 등 서구문명에서는 별자리를 그린 그림이 거의 없으므로 고구려 벽화천문도가 세계에서 가장 앞선 것으로 생각된다”며 “앞으로 세계학회에서 이런 사실들을 제대로 알리고 평가받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별자리 - ‘사신도’또는 ‘사숙도’

좌청룡, 우백호, 북현무, 남주작의 그림을 사신도(四神圖)라 한다. 고구려인들은 동서남북 네 방향에 따라 각각 별자리를 배치시켰다. 김일권 박사는 이를 ‘사숙도(四宿圖·사방위별자리)’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즉 북쪽은 북두칠성, 남쪽은 남두육성으로 서구 별자리로는 각각 큰곰자리, 궁수자리에 해당한다. 동쪽은 심방육성(心房六星), 즉 전갈자리이며 서쪽은 삼벌육성(參伐六星), 즉 오리온자리다. 북한 남포시에 있는 약수리 고분에는 청룡이 심방육성과 함께, 백호가 삼벌육성과 함께 그려져 동서로 대칭되는 개념을 보여준다. 북두는 인간의 사후세계를 수호하는 별자리이며 남두는 인간의 무병장수와 수명연장을 주관한다. 이는 생사의 두 세계가 영원으로 지속되기를 바라는 고구려인의 우주관이 반영된 것이다.

(경향신문 2004-7-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