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침몰론

한국 침몰론은 일본열도 침몰론과 다르다. 일본 침몰론은, 지구 온난화가 진전돼 양극의 빙하가 녹으면 지구의 해수면이 높아지고, 그렇게 되면 일본 열도의 3분의 2가 바다에 잠긴다는 가설이다. 일본 침몰론이 실현성이 희박한 환경 재앙을 경고하는 극단적인 예라면 한국 침몰론은 무엇인가.

그건 한마디로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가 엉망이 돼 나라가 파탄지경에 빠진다는 가설이다. 이런 예상도 실제로 일어날 가능성은 없지만 ‘침몰’이라는 비유어의 힘이 강력하기 때문에 항상 논란을 불러온다. 한국의 침몰을 경고한 책 가운데 화제를 몰고 온 책이 2000년에 출판된 ‘한국호의 침몰’이다. 저자 지만원씨는 처음에는 군사 평론가로 출발했다가 평론 범위를 넓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한국 사회의 문제점을 21가지로 요약했다.

‘한국호의 침몰’의 첫 대목은 이렇게 시작된다. 망해가는 기업이 은행에 ‘내가 망하면 당신도 망한다’는 메시지를 보낸다. 은행은 ‘잘해봅시다’ 하며 돈을 더 뀌어준다. 이윽고 둘은 함께 부실의 구덩이에 빠진다. 지씨는 이 책에서 2000년 당시 국가 빚이 여당은 111조원 야당은 428조원이라고 하지만 실제론 야당 계산보다 훨씬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호가 타이타닉호처럼 빙산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고 결론 짓고 이를 예방할 22가지 대안을 제시했다.

그 이후 지씨의 침묵으로 한국 침몰론은 수그러들었다 그러나 최근 이것이 화려하게(?) 부활했다. 책 제목은 ‘대한민국은 침몰하는가’, 저자는 김대중 정부때 대통령 비서실 복지노동 수석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한 이태복씨다. 이씨는 이 책에서 한국은 2004년을 기해 남미형 국가가 됐다고 진단한다. 그는 한국과 남미는 경제 불안, 빈부 양극화, 정치 지도력의 부재 등 세가지 점이 닮았다고 말한다. 그는 ‘한국의 위기는 전환기적 위기요, 파국으로 빠져 가는 총체적 위기’라고 결론짓고, 여섯가지 처방전을 제시했다.

그 처방전 가운데는 익히 듣던 두가지 대책이 있다. 지방분권보다 행정개혁을 먼저 할것, 투자기업에 모든 제한을 풀것이 그것이다.

침몰 경고문에서 항상 빠지지 않는 말은 ‘이대로 가면’이라는 조건절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잘못하고 있을까. 최신형 정답은 ‘누구나 문제를 알고 해결책도 아는데, 아는대로 행동하지 않고 엉뚱한 일만 하는것’아닐까.

<김성호 / 논설위원>

(문화일보 2004-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