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는 중국과 대등한 독립국가다

북한과 중국이 지난 1일 고구려 유적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동시 등재함에 따라 고구려를 두고 남북한과 중국이 벌인 ‘역사전쟁’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중국 정부는 2002년 2월 사회과학원 산하 ‘중국변강사지연구중심’에서 ‘동북변강 역사와 현상계열 연구공정’(이하 동북공정) 계획을 추진하면서 본격적으로 고구려를 자국 역사에 편입하려는 의도를 드러냈다. 이런 실상은 지난해 7월에야 국내에 정확히 알려져 학계는 물론 온 국민의 분노를 샀다.

이제 남은 문제는 고구려사를 올곧게 규명해 중국 정부의 주장대로 고구려가 중국의 변방 정권이 아니라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한 독립국가이며, 그 정통성은 한반도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는 일이다. 역사학계가 이 같은 길에 앞장서야 함은 두말할 나위 없다. 따라서 중국 역사학자들의 동북공정 계획을 분석하고, 이들의 논리를 조목조목 반박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 중국측 주장 = 최근 들어 역사학계는 물론 출판가에서는 동북공정을 비판하는 책들이 봇물처럼 터져나왔다. 그 가운데 지난 20여년간 간도 연구에서 선두 역할을 해온 백산학회의 성과를 집대성한 ‘고구려는 중국사인가’는 중국이 고구려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역사적 근거로 다음과 같은 핵심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다고 밝힌다.

중국 역사학자들은 고구려가 출발부터 멸망까지 중국 동북방에 거주한 소수민족의 지방정권이며, 중국과 칭신납공(稱臣納貢·신하를 칭하고 조공을 바침) 관계를 맺어왔다고 주장한다. 수나라와 당나라가 고구려를 상대로 전개한 전쟁은 어디까지나 고구려의 도전에 대한 수·당의 토벌이므로 국내 전쟁이라고 설명한다.

이어 고구려 멸망 후 그 유민 대부분이 중국인에 동화됐고, 고구려와 고려는 존속기간이나 지배지역, 지배층이 다른 별개의 왕조라고 강조한다. 이들 학자는 현재의 중국 내 조선족이 삼국시대 신라인을 주체로 형성됐다고 밝히고, 따라서 고구려인과 조선족을 한 핏줄로 봐서는 안 된다고 역설한다.

◆ 한국측 주장 = 이인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교수는 국내 사학자 9인과 함께한 ‘대고구려역사 중국에는 없다’에서 고구려가 중국과 대등한 정복국가임을 강조한다. 고구려가 첫 수도 졸본이나 두 번째 수도 국내성을 세운 기원전 37년∼서기 3년 당시에는 이들 지역이 중국 경내가 아니었다는 것. 또 고구려는 이후 한나라가 건설한 한사군을 공격해 이들 가운데 현도군을 쫓아내고, 계속해서 전연·후연과 위나라 등 중국 국가들과 전쟁을 치렀다. 따라서 고구려의 활동 범위는 이미 중국 경내를 벗어났다. 이런 점에서 고구려가 수·당과 자웅을 다툰 전쟁은 중국의 내전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이 교수는 고구려가 중국과 신하관계를 맺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그 실제적 의미를 파헤쳐야 한다고 지적한다. 건국 초 고구려는 중국의 책봉도 받지 않았고 조공도 바치지 않았다. 남북조 시대에 가서야 중국 국가의 지방관직을 제수받고 조공을 바쳤다. 그 실상을 보자면, 이미 죽은 장수왕에게 남북조 국가들이 각각 벼슬을 내리고 고구려는 이들 국가에 조공을 바쳤다. 동시에 두 국가의 신하가 될 수 없다는 사실로 미뤄 이 같은 관계는 외교적 예우 방식에 불과하다고 이 교수는 설명한다.

윤명철 동국대 교수 역시 저서 ‘역사전쟁’에서 ‘칭신납공’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교역이라는 현실적인 입장에서 교섭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인철 교수는 고구려 멸망 후 유민 대다수가 당나라로 옮겨 중국에 동화됐다는 주장 역시 허구라고 밝힌다. 이 교수에 따르면 고구려 유민 상당수는 이후 발해의 주민이 됐다 발해가 망한 뒤에는 압록강 이남의 주민들이 고려에 편입됐다. 이후 압록강 이북 주민들도 고려로 투항해왔다. 고구려와 고려가 별개 왕조라는 주장 또한 그르다.

윤명철 교수는 ‘후고구려’라는 국명을 이어받은 고려는 신라와 발해를 중간매개 삼아 고구려를 계승했다고 반박한다. 윤 교수에 따르면 ‘고려사’에는 태조 왕건이 고구려 고토를 수복하려는 의지가 표현돼 있고, 고려 때 이규보가 쓴 ‘동명왕편’ 역시 고려가 고구려를 계승했음을 주장한다.

◆ 중국은 왜 고구려를 원하나, 우리는 왜 고구려를 지켜야 하나 = 역사학자들은 한결같이 동북공정은 중국이 과거에도 그랬던 것처럼, 21세기에도 전통적인 중화사상을 내세워 패권국가를 지향하겠다는 속셈을 그대로 담은 것이라고 지적한다. 중화적 세계질서의 재현은 고구려사의 편입에서 시작해 간도를 영원히 한반도와 단절시켜 혹시라도 대두할지 모를 소수민족의 분리·이탈을 사전에 막자는 취지 또한 담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고구려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윤명철 교수는 고구려가 한민족사에서 반도사관을 극복할 수 있는 근거를 주는 나라라는 점을 강조하고, 우리 민족의 자아를 찾고 그것을 확립할 수 있는 원형이 고구려사에 있다고 부르짖는다.

이인철 교수 역시 한국인에게 고구려 역사는 특정한 일국의 역사로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무의식에 ‘대국의 기억’으로 잠재돼 있음을 강조한다. 이어 고구려는 과거에 대한 동경과 향수의 대상일 뿐만 아니라 대륙으로 뻗어 나가는 미래지향의 근거이며, 한반도의 미래 모델로도 충분한 가치를 지녔다고 밝힌다.

(세계일보 2004-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