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도는 우리땅

중국의 리펑(李鵬)총리가 한국의 이홍구(李洪九)총리에게 한국인 관광객들이 “간도(間島)는 한국땅”이라고 말하는 등의 언행 자제를 요청한 것은 1995년이었다. 백두산을 관광하는 한국인들이 백두산은 물론 만주 전역이 한국 땅이라고 말하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다. 한국인이 고구려의 고토(故土)인 만주가 한국땅이라고 생각하는 현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 2002년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을 개시, 고구려 역사를 중국 역사로 만들려는 역사전쟁을 일으켰다. 두 가지 중국 음모가 표면화된 것이다. 하나는 통일한국과의 국경문제 시비를 아예 차단하자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중화주의 패권주의로 한국을 예속화시키려는 것이다. 한·중수교 이후 한국은 장관급을 주중대사로 임명하고 있는데 반해 중국은 부국장급을 주한대사로 임명해 온 것에서도 엿볼 수 있다.

▼ 한국과 중국간에 간도문제가 제기된 것은 인조 5년(1627)이다. 조선과 후금(後金)이 강도회맹(江都會盟)을 체결한 때부터이다. 두만강 건너편 동간도 지역에 양 국민의 출입을 금지, 소위 봉금(封禁)에 합의한 것이다. 숙종 38년(1712) 조선왕조와 청(淸)나라가 백두산정계비를 설치한다. 만주족이 세운 후금이 나라이름을 청으로 바꾸고, 만주족의 발상지인 간도지역에 사람이 들어가 살지 못하게 한 조치이다. 청·러 베이징조약으로 연해주가 러시아 땅이 된다. 청·일의 간도협약에 따라 간도 영유권을 일본은 청나라에 넘겨주었다. 이때가 일본이 한국의 외교권을 침탈한 1909년이었다.

▼ 중국 청나라에서 1719년에 만들어진 지도 황여전람도(皇輿全覽圖)의 유럽판인 보곤디(1750년) 등 간도지도가 발굴, 공개되었다. 지금의 압록강 서북쪽의 평황청, 고구려 초기 수도 환런(桓仁) 지안(集安) 연변조선족자치주인 지린(吉林) 허룽(和龍)까지가 한국땅으로 표시되어 있다. 역사상 우리 땅인 간도를 언제 회복할 것인가.

(강원일보/金永琪논설고문 2004-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