四神호위 고구려 철마군단 첫 공개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 58점 소장
南進 정책 보여주듯 남쪽으로 향해

5세기 고구려에서 제작된 ‘철마(鐵馬) 군단’ 유물이 처음으로 확인됐다.

평양의 조선중앙역사박물관(관장 김송현)에 소장된 이 철마 군단은 모두 58점의 철제·청동제 기마 모형이 전군·중군·후군의 모두 12행 군대식 대열을 이루고 있다. 이들은 모두 남쪽을 향하고 있어 당시 고구려의 남진 정책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열의 사방에 고구려 벽화의 주요 소재인 사신(四神)을 배치하고 있어 주목된다.

최근 KBS 다큐멘터리 제작팀과 함께 평양을 방문한 서길수(徐吉洙) 고구려연구회장은 이 유물의 전모를 확인하고 8일 사진을 공개했다. 이 유물은 북한이 발행한 ‘조선유적유물도감’에도 실리지 않아 그동안 전모가 알려지지 않았다.

1994년 강원도 철령 고구려 건물터 부근의 한 무덤에서 출토된 이 유물은 50점의 철제 말과 4점의 철제 동물, 4점의 청동제 말로 구성돼 있다. 5세기 고구려는 장수왕(재위 413~491년) 때인 서기 427년 수도를 평양으로 옮긴 뒤 475년 백제의 수도인 한성을 점령하고 개로왕을 살해하는 등 대대적인 남진 정책을 폈다. 무덤의 주인은 당시 장수왕의 휘하에 있었던 고위 장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의 크기는 높이 3~25㎝, 길이 5~30㎝로, 12행이 전군·중군·후군(각 4행)의 3개 부대로 나뉘어 배열돼 있다. 각 부대는 큰 말을 앞에 두고 작은 말을 뒤에 두어 말의 크기로 군사의 계급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말들은 모두 생김새가 다르게 표현됐으며, 말의 목과 몸체에는 비늘갑옷과 말안장·재갈·등자 등 여러 가지 마구(馬具) 장식을 세밀하게 표현했다. 서길수 회장은 “이렇게 군사 편제를 갖춘 고구려 유물은 처음 확인되는 것”이라며 “당시 고구려의 뛰어난 철기 기술과 군대의 편성·대오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라고 말했다.

이 유물에서 가장 독특한 부분은 고구려 고분벽화에 사신도와 행군도가 그려진 것과 마찬가지로 기마 대열의 동·서·남·북 4방에 각각 ‘사신’인 청룡·백호·주작·현무를 상징하는 동물 모형을 배치했다는 것이다. 함께 유물을 참관했던 전호태(全虎兌)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중국 한대(漢代)의 군사대열 중에 사신을 그린 깃발을 사용했다는 기록은 있지만, 이처럼 사신에 둘러싸인 철마 대열의 존재는 유례가 없다”며 “사신으로 표현되는 오행(五行) 사상 등 고구려인의 우주 인식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2004-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