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고구려] 3.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학술.정치적 홍보 더 강화
세계 속 한국사 인정받아야

"고구려 관련 영어 논문은 5편 정도입니다. 얼마 전 고구려 논문을 준비하는 미국 대학생의 문의를 받았지만 마땅히 소개할 만한 영문 자료가 없더군요. 영문 인터넷 사이트도 없고요."

고구려연구재단 박아림(34) 연구원의 말이다. 그는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고구려 고분벽화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고 최근 귀국했다.

중국 언론들이 '고구려사=중국사'를 주장하고 나서자 국내 고구려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우리도 홍보를 강화해 국제 학계의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 고구려의 진실을 세계에 바로 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영문 자료는 태부족이다. 지난 중국 쑤저우(蘇州) 세계유산위원회(WHC) 총회에서도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한국위원회가 만든 영문 소책자 한 부가 그나마 외국 전문가들에게 내놓을 만한 것이었다. 고구려연구재단이 연내에 잡지.고구려 소개서.번역서 등 3종을 영문으로 펴내기로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재단의 상임이사인 최광식(고려대 한국사) 교수는 나아가 "단기 처방으로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축하하는 대형 이벤트를 남북한이 함께 펼치는 것도 좋겠다"고 제안했다. WHC 총회에서 세계에 보인 '남북 공조'를 재현하자는 것이다.

신화통신.인민일보 같은 중국의 대표적 언론이 고구려사를 왜곡 선전하기 시작한 것은 고구려사 문제가 단순한 학문 차원을 넘는 민감한 정치적 사안임을 입증한다. 따라서 고구려연구재단이 대외 홍보 역할을 도맡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여호규(한국외국어대 한국사) 교수는 "고구려연구재단이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못한다면 임무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도 중국에 대해 적극적으로 '역사 왜곡 중지'를 요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보의 내용도 중요하다. 우리끼리의 자화자찬이 아니라 객관적 증거에 입각해 국제사회에서 보편성을 인정받아야 한다. 박선영(포항공대 중국근대사) 교수는 "한반도 통일과 소수민족 문제에 대해 중국이 느끼는 위기의식의 본질을 알려야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의 주류 민족은 고구려가 아니라 신라'라는 중국 측의 주장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사의 체계를 정립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강경한 민족주의에 입각한 주장만 펼쳐서는 국제사회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는 목소리도 높다. 김기봉(경기대 서양사) 교수는 "'고구려사=한국사'를 동어반복식으로 외치기 보다는 '세계 속의 한국사'를 지향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의 허권 문화팀장은 "우선 차분해지자"고 제안했다. WHC 총회에 참석했던 허 팀장은 "총회에서 중국의 고구려 유적을 보고하는 제3국 전문가가 '고구려는 삼국시대 한국사의 일부'라고 설명했고, 일본 대표는 '중국이 아닌 고구려가 일본에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면서 "국제학계가 아직 중국 입장을 편드는 상황은 아니므로 우리 학계와 언론은 좀더 냉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중앙일보 200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