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역사 기행] <19> 광개토태왕 그는 누구인가?

18 세에 왕의 자리에 오른 뒤 21 년 간 고구려 이끌어

373년 고구려 왕실에 담덕이란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가 바로 고구려 역사에서 가장 널리 이름을 날린 광개토대왕입니다.

광개토대왕은 18 세의 비교적 어린 나이에 왕의 자리에 올라 39 세의 나이로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하지만 391년부터 412년까지 그가 다스린 21 년의 시간은 고구려 역사를 크게 뒤바꾸어 놓았습니다.

그가 유명해진 것은 그의 아들 장수왕이 아버지의 무덤 앞에 거대한 비석을 세웠고, 그것이 120여 년 전 새롭게 발견됐기 때문입니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광개토대왕릉비에 기록된 글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그의 진면목을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광개토대왕은 고구려 역사상 가장 눈부신 정벌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 때문에 후손들이 ‘크게 영토를 넓힌’(廣開土) 그의 훌륭한 업적을 기려 대왕(大王)이라고 불렀으며, 더 나아가 ‘태왕(太王)’이라 칭했던 것입니다.

거란 정벌과 후연 공격으로 북방 진출의 초석 다져

능의 비문에 따르면 광개토대왕 최초의 공적은 395년에 거란족을 정벌한 일입니다. 대왕은 친히 군사를 이끌고 의무려 산과 노노아호 산맥을 지나서 요하 유역의 염수 지역을 공격하여 거란족 3 부락 6~700 명을 쳐부쉈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소ㆍ말ㆍ양 등을 얻어 고구려로 돌아왔습니다. 기병을 육성하기 위한 좋은 말들을 마련하고, 오랜 적인 모용선비족이 세운 후연을 북쪽에서 압박할 수 있는 거란족 정벌은 고구려의 북방 진출에 큰 성과였습니다. 그리고 광개토대왕은 계획대로 후연을 적극적으로 공격했습니다.

요하를 넘어 후연의 수도와 가까운 숙군 성을 공략하여 평주자사를 패배시켰습니다. 404년에는 후연의 후방인 현재의 북경 부근의 연군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고구려의 일방적인 승리가 계속되는 가운데 후연은 고구려와의 항쟁 과정에서 내분이 일어나 고구려인의 후손인 고운이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래서 고구려는 고운이 세운 북연을 신하의 나라로 삼게 됩니다. 북연은 고구려의 영향력 아래 있던 나라고, 특히 435년 북위의 공격을 받아 멸망의 위기에 닥칠 때에는 고구려에게 구원을 요청하였고, 그 왕과 많은 백성들이 고구려로 넘어오게 됩니다.

동북쪽과 남쪽으로 세력 크게 확장시켜

광개토대왕은 또 동북쪽으로도 세력을 크게 넓혔습니다.

410년 광개토대왕은 친히 군대를 이끌고 동부여를 공격해 64 개성, 1400촌락을 정벌했습니다. 그러자 동부여왕은 대왕에게 곧바로 항복하게 됩니다.

고구려는 이 때 동부만주와 연해주 지역도 함께 차지하게 됩니다.

또 소규모의 군사를 보내 숙신족을 돌아보고 이들을 신하의 나라로 삼아버립니다.

대륙쪽만이 아니라, 광개토대왕은 남쪽으로는 백제를 공격하여 굴복시켰습니다. 그리고 신라 땅에 쳐들어온 가야ㆍ왜 연합군을 격파합니다.

더 나아가 백제와 왜 연합군도 계속해서 물리칩니다. 이처럼 광개토대왕은 신라를 속국으로 삼고, 금관가야를 멸망에 이르게 하였으며, 백제를 굴복시켜 한반도 전체를 크게 호령했습니다.

영토 확장 못지않게 나라의 내실 다지는 데도 노력

그가 이렇듯 빠르게 고구려의 영토를 크게 넓힐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최고군사령관으로서의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또 철갑옷을 입은 군사를 많이 키우고, 왕의 친위군인 왕당군을 따로 편성하였습니다. 해군을 별도로 육성하여 수륙 양면에서 입체적인 작전을 펼치게 하는 등 군사 부분에서의 개혁을 성공적으로 이뤄 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요인은 따로 있습니다. 앞서 보았듯이 소수림왕과 고국양왕 때에 법과 교육 그리고 종교 분야 등에서의 개혁을 통해 국력을 꾸준히 키워 왔기 때문에 그의 활발한 정복 활동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 점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광개토대왕은 밖으로 팽창하는 것 못지않게, 고구려의 내실을 다지는 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능비문에는 ‘그의 은혜와 혜택이 하늘에 가득 찼고, 위엄과 무공은 온 세상을 덮었으며, 못된 자들을 없애 치우고 생업을 편안케 하니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은 넉넉하고 오곡이 풍요롭게 무르익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비문에서 보듯 광개토대왕은 단지 땅만 넓힌 왕이 아니었습니다.그는 고구려를 잘 사는 나라, 당당한 대국으로 변모시켰던 것입니다.

그의 등장 이후 고구려는 지역 강국에서 벗어나, 동북 아시아의 대제국으로 등장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고구려 사람들에게 나라를 건국한 추모왕과 더불어 대표적인 영웅으로 칭송을 받은 것입니다. 그 때문에 후손인 우리에게도 세종 대왕과 더불어 가장 존경하는 역사적 인물로 기억되고 있는 것입니다.

<김용만 / 고구려역사문화연구소장>

(한국일보 200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