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유산 고구려] 2. 국제사회의 시각

"조공국 백제는 왜 한국 나라냐" 외국학자들 중국 모순에 반박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 유적에 대한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보고서(올해 3월 작성)에는 '역사'항목이 들어 있다. ICOMOS 보고서는 해당 유적에 대한 국제사회의 객관적인 시각을 대변한다. 당연히 세계문화유산 등재 과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국 쑤저우에서 열린 제28차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ICOMOS 보고서는 고구려의 첫 수도였던 오녀산성과 두번째 수도 국내성, 그리고 마지막 수도였던 평양의 역사를 개괄했다.

'평양으로 수도를 옮긴 후에 국내성은 '보조 수도(supporting capital)'로 간주됐다. 국내성은 오랫동안 방치됐으며, 근대에 들어 지안(集安)을 건설한 1902년 이후에 복구 됐다.'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한 평양은 고대 한국(고조선)의 수도로서 오랫동안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이었다. 그것이 바로 고구려 왕국이 수도를 평양으로 옮겨 고구려를 발전시키려고 애쓴 이유다.'

보고서는 '보조 수도'였던 국내성이 1000년이 넘도록 방치됐다고 지적하면서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가 평양을 중심으로 계승됐다는 점을 명시했다. 정치성을 최대한 배제하는 ICOMOS 보고서이지만, 적어도 고구려사에서 평양이 차지하는 비중만큼은 높이 평가한 것이다. '고구려사=중국사'라는 중국 측 시각과는 분명히 차이가 난다.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지난달 28일부터 사흘간 '고구려의 정체성'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가 열렸다. 고구려연구회(회장 서길수 서경대 교수)가 주최한 이 학술대회에서 미국 하버드대의 마크 E 바잉턴 박사는 '해결되지 않는 과거와 현대사의 딜레마: 중국 역사 속의 고구려'란 논문을 발표했다. 중국 측 주장의 허점을 날카롭게 지적한 논문이었다. 바잉턴은 "20세기 이전의 중국 역사서는 고구려를 비중국계 조공국으로 서술하고 있다"며 "고구려를 중국의 일부로 인식하는 중국의 관점은 20세기 들어 현대적인 민족(nation) 과 민족국가(nation-state)의 개념이 발달한 결과"라고 밝혔다. 그는 또 "고구려가 중국에 속한다는 중국의 논리는 백제의 경우에도 적용돼야 할 텐데, 중국 학자들은 백제를 한국의 나라로 간주하는 모순을 범하고 있다"며 "결국 중국 측 주장은 현 영토의 안정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학술대회에서 일본 교토부립대의 이노우에 나오키 교수는 '일국사(一國史)적 사관'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고구려 영토가 오늘날의 중국.북한.한국에 걸쳐 있기에 근대 국민국가의 역사관인 일국사의 범주로는 이해하기가 곤란하다"며 "자기 민족 중심적인 역사관을 배제하고 새로운 고구려사 연구를 지향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구려연구재단의 임기환 연구실장은 "'역사분쟁'에서 제3자인 국제 학계의 시각은 매우 중요하다"며 "중국측 주장이 합리성을 벗어나 지나치게 정치적임을 방증하는 '원군'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200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