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뿌리는 발해연안문화"

한(韓)민족 문화는 기원이 어디이며, 언제쯤 형성되고 변화ㆍ발전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을까? 이에 대해 기존 학계는 대체로 북방 시베리아를 주목했으며 이런 흐름에 그다지 큰 변화가 감지되지는 않는다.

이런 접근법에서 한반도 신석기시대 문화를 대표한다는 빗살무늬토기는 특히 관심을 끌었다. 시베리아 지역 출토품이 한반도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것이며, 그래서 한반도 신석기문화는 원류가 시베리아에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신석기문화 시베리아 기원설은 그 영향이 역사시대에도 미치기에 이르는데, 예컨대 4-6세기 신라 황금문화의 기원을 시베리아에서 찾고자 하는 경향도 그 잔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학자이자 고고학자인 선문대 이형구(李亨求. 60) 교수는 이를 반대하면서 '발해연안(渤海沿岸) 문명'을 제창한다. 즉, 발해만 유역 일대에서 일어난 문명이 한민족 문화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발해연안'은 구체적으로 어디일까?

"넓은 의미로 발해를 중심으로 남부의 중국 산둥반도ㆍ서부의 허베이성 일대ㆍ 북부의 랴오닝성 지방ㆍ북동부의 랴오둥 반도와 동부의 지린성 중남부에다 한반도를 포함한 지역 개념"이다.

이 지역을 주목하는 까닭은 일찍이 약 50만 년 전 무렵에 이미 구석기시대 문화 흔적이 곳곳에서 확인되는 데다, 특히 신석기시대에 접어들면서는 빗살무늬토기가 공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교수는 본격적인 '발해연안문명' 태동의 가장 뚜렷한 첫 증좌로 빗살무늬토기 문화를 주시한다.

더욱이 이 문화를 기반으로 성립한 정치체가 바로 고조선이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이런 발해연안문명이 황허 중상류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소위 '중원 문화'와도 뚜렷이 구별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에 더해 기원전 1900년 무렵까지 연대가 올라가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는 네이멍구 츠펑(赤峰) 소재 유적지인 하가점(夏 家店) 하층문화(下層文化)의 청동기 문화 진입 단계가 중원문화의 그것과 맞먹거나 오히려 빠르다는 점을 주시한다.

더구나 지금까지 한국 청동기문화 원류로까지 거론된 시베리아 지역 '카라스크 문화'의 연대(기원전 12-8세기)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이교수가 그 스스로 지난 40년 간 연구를 총투입한 결실이라고 할 만큼 심혈을 기울여 최근 완성품으로 내놓은 단행본 제목이 「발해연안에서 찾은 한국고대문화의 비밀」(김영사 刊)인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번 책은 1991년에 초판이 나온 「한국 고대문화의 기원」(까치 刊)에 대한 명목상 확대 개정판이지만, 면모를 일신했다.

다루는 시기와 무대는 구석기시대 이래 고려시대까지 동북아시아이며, 이 중에서도 특히 고조선과 부여, 고구려에 대한 비중이 높다. 41개 글이 다룬 주제는 빗살 무늬토기ㆍ고구려무덤ㆍ고인돌ㆍ향당(무덤 위 제사 건물)ㆍ갑골문자와 청동거울ㆍ고 분벽화ㆍ평양의 '고구려 안학궁' 등이다.

종전 책에서는 빠졌던 인용 및 참고문헌을 대폭 보강했으며, 무엇보다 원색도판 300여 장을 요소요소에 배치했다. 이들 도판 중 상당수가 중국과 북한을 현지답사하며 저자가 촬영한 것들이다.

(연합뉴스 2004-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