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시아의 슬기를 아우른 동검

먼길 온 청동칼 호리호리해진 몸매

얄팍한 ‘왜학(倭學)’의 곡필과 우리의 후진 속에 오롯한 문명사의 한 장이 자칫 지워질 뻔했다. 옛 이야기가 아니다. 1920년대부터 일본 고고학계에서는 한국에 청동기 시대가 없었다는 ‘청동기 부재설’을 꾸며내면서 제멋대로 신석기 시대와 철기 시대 사이에 이른바 ‘금석병용기 시대’라는 얼토당토 않는 ‘시대’를 끼워넣었다. 그네들의 말대로 금속붙이와 돌붙이를 함께 썼다면, 사실상 그 시대는 철기 시대이지 무슨 ‘병용기 시대’는 아니다. 이러한 속내평도 모른 채 후진으로 무지몰각했던 우리는 그네들의 주장을 그렇거니 하고 믿어왔다.

잃었던 빛을 되찾는다는 광복은 우리를 잠에서 깨웠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제대로 깨어나지 못하고 일시 미로에 빠지기도 했었다. 북녘에만 청동기 시대가 있고 남녘에는 없었다는 이른바 ‘국부존재설’이 일부에서나마 나돌았다. 그러나 60년대에 들어서면서 남북을 가리지 않고 이곳저곳에서 청동유물이 속속 발견되면서 우리의 문명사는 원상을 복원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에서 찬란한 청동기 문화가 그 면모를 하나씩 드러내고 있다.

원래 구리는 기원전 6천년께 처음으로 오늘날 중동 지방에서 채취되기 시작하였으며, 기원전 4천년께에 이르러 비로소 구리와 주석을 합금시킨 청동이 만들어졌다. 그 후 청동기는 유럽과 중앙아시아, 시베리아를 거쳐 기원전 1천년기쯤에 동아시아에까지 전해진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보면 청동기 시대는 기원전 4천년부터 1천년까지 약 3천년간 지속된다.

모든 지역의 청동기 문화는 발생으로부터 조락에 이르기까지 양상이나 규모에서 하나 같지는 않고 일정한 특수성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각 지역의 청동기 문화를 통틀어 보면, 청동기를 비롯한 합금 용기와 이기가 사용되고, 도시문명이 발달하며, 축력에 의한 정착농경이 시작되고, 원시적인 종교와 예술이 출현하는 등 전대와 구별되는 일련의 보편적 특색을 나타내고 있다. 한국의 청동기 문화도 예외는 아니다.

이러한 보편성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 청동기 시대의 편년에 관해서는 그 시작을 어떤 기준에서 보는가에 따라 학계, 특히 남북한 학계의 견해는 좀 다르다. 편년의 하한을 기원전 4~3세기께로 보는 데는 대체로 일치하나, 상한에 대해서는 기원전 2천년설(북한)과 기원전 1천년설(남한)로 엇갈리고 있다. 편년이야 어떻든간에 우리 나라에서 청동기 문화가 고조선 시대에 꽃피었다는 데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만큼 고조선은 발달된 청동기 문화로 인류문명의 창달에 응분의 기여를 하였다. 고조선 사람들은 구리와 주석말고도 남달리 아연을 섞어 현대의 주조기술로도 그려내기 어려운 불가사의의 잔무늬거울(다뉴세문경:多紐細文鏡)과 같은 아름답고 질 좋은 각종 청동기를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와의 교류를 통해 청동기 문화를 한결 살찌웠다.

유럽서 출현한 안테나식 동검 시베리아 거치며 새모양 얻고
한반도선 칼몸좁은세형동검 발전 유라시아 문명융화의 본보기로

기원전 2천년 초부터 남시베리아 일대에서 전개된 안드로노보 청동기 문화에 의해 중앙 유라시아는 일제히 청동기 시대에 들어갔다. 그러다가 기원전 1천2백년께 이 문화의 모태에서 우리의 청동기 문화와 관련이 많은 카라수크 청동기 문화가 태동하였다. 이 문화는 예니세이강 중류의 미누신스크와 알타이 지방에서 성행하였는데, 그 여파는 동쪽으로 바이칼과 몽골 지방을 거쳐 한반도까지 미쳤다. 카라수크 청동기 문화의 특징인 돌널무덤(석관묘)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고대 한민족이 활동하던 중국 동북의 지린성과 요녕성 일대에서 청동제 단검이나 단추 등 유물과 함께 출토되고 있다. 이것은 한국 청동기 문화와 카라수크를 비롯한 북방 시베리아 청동기 문화간의 상관성을 짙게 시사해준다.

이와 더불어 한반도에서 출토된 조형(鳥形)안테나식 세형동검은 청동기 시대 유라시아와 한국의 만남이 빚어낸 상징적 융합물이다. 안테나식 검이란 칼자루 양끝이 벌레의 더듬이(촉각)처럼 위로 뻗어 올라갔거나, 둥글게 구부러져서 고사리 같은 타래 모양(와형)을 이루고 있는 형식의 검을 말한다. 이러한 검은 본래 중부 유럽의 청동기 시대 말기(기원전 9~8세기)에서 철기 시대에 걸쳐 성행한 검 형식이다. 조형안테나식 세형동검이란 새 모양의 칼자루를 갖춘 한국 특유의 좁은 놋단검을 말한다. 중국 동북 요녕성 일대에서 한반도를 거쳐 서부 일본에 이르는 지역에서 이러한 동검(일명 촉각식동검)이 발견되는데, 그 발생지에 관해서는 아시아니 유럽이니 하는 등 이론이 있어서, 막연하게 ‘북방식 검’이라고도 부른다. 이에 관한 판명은 그 열쇠를 쥐고 있는 우리의 몫일 것이다.


조형안테나식 세형동검의 대표적 유물이 청동기 시대 말기 또는 철기 시대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대구 비산동 분묘유적에서 출토되었다. 그곳에서 모두 5점의 세형동검이 발굴되었는데, 그 중 한 점이 바로 이런 동검이다. 길이 32.2cm, 너비 3.1cm, 칼자루 길이 12.5cm의 이 동검의 칼자루는 대나무 모양으로 마디가 있고 칼자루 끝 장식은 오리 모양의 새 두 마리가 머리를 틀고 서로 마주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와 유사한 칼자루가 평양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중국 요녕성 지방이나 일본 대마도에서도 이러한 유형의 동검이 발견되었다. 이상 세 나라에서 발굴된 유사 유물들의 실연대는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약 3~4백년간에 걸친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동검의 기원지는 유럽으로 알려지고 있다. 기원전 2천년께 에게해 지방에서 처음 장검이 무기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기원전 15세기에 이르러서는 북·중유럽의 여러 지역에서 성행하다가 청동기 시대 후기에 독일로 전해져서 큰 발전을 보게 된다. 독일에서 검은 넓은 접시 모양의 칼자루를 취하다가(기원전 10세기), 그것이 점점 커져서 두 끝이 위로 뻗어 올라가는 뭬리게르식 검으로 변한다. 이것이 바로 안테나식 칼자루의 조형이다. 다시 기원전 9세기(할슈타트 B2기)에 와서는 칼자루 두 끝이 고사리처럼 감겨서 완전한 안테나식이 된 이른바 쮜리히식 검 모양으로 고착된다.

이렇게 독일에서 출현한 안테나식 동검이 동진하여 중앙아시아나 시베리아, 몽골을 거치는 과정에서 그곳에 유행하던 스키타이 동물 장식의 영향을 받아 조형(새 모양)을 받아들인다. 그것이 다시 한국을 비롯한 세형동검 문화권에 들어와서는 칼몸이 좁아져서 마침내 특유의 조형안테나식 세형동검이 출현하게 되었다. 이 새로운 형의 동검이 일본까지 전파되어 중국 동북지역과 한국, 일본을 망라하는 이른바 ‘조형안테나식 세형동검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이 문화권의 중심에 가장 세련된 융합 동검을 만들어낸 한국이 자리하고 있다.

문명은 교류하는 과정에서 이질적 문명간의 접촉으로 인해 이러저러한 접변(接變)이 일어나게 된다. 그러한 접변에는 상이한 문명 요소가 건설적으로 조화되어 일어나는 융합(融合)과 피차가 아닌 제3의 새로운 문명이 형성되는 융화(融化), 그리고 일방적 흡수인 동화(同化)의 세 가지 형태가 있다. 그중 융합은 선진문명을 받아들여 전통문명의 내용을 풍부하게 발전시키는 등 순기능적 구실을 한다. 이에 비해 융화는 그 기능이 유동적일 뿐만 아니라, 드문 현상이며, 동화는 전통문명을 말살하는 역기능을 한다. 역사는 문명간의 조화로운 융합만이 인류가 공생공영하는 길이라는 것을 증언하고 있다.

보다시피 조형안테나식 세형동검은 구성 요소에서 유럽의 안테나식 칼자루에 북방 유목문화의 동물장식을 곁들인 후 한국 고유의 좁은 칼몸과 접목된 청동기 시대의 전형적인 융합물이다. 실로 유라시아 문화의 슬기를 보듬은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한겨레신문 200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