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동북공정 맞설 학술연구 급선무

고구려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됨에 따라 국내 고구려 연구단체들의 행보가 빨라질 전망이다. 이번 고구려 유적 세계유산 등재는 고구려가 특정 국가의 독점을 넘어 세계적 문화유산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남북한 교류·협력이라는 두툼한 성과도 낳았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북한이 등재를 신청했을 때 전폭적으로 지원한 데 이어 이번 쑤저우 회의에서도 북한측과 함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물밑 작업을 벌였다. 문화재청은 고구려 고분 보존을 위해 2000년 이후 매년 10만달러의 신탁기금을 유네스코를 통해 북한에 지원했으며, 올해는 4억원의 복원기금을 확보해 놓고 있다. 앞으로 2년간 매년 5억원의 기금사업도 벌일 계획이다. 이제 우리 정부나 고구려 연구단체들은 중국의 고구려 유산 활용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고구려사 사수’에 매달리고 있다. 고구려연구단체 관계자로부터 향후 활동계획을 들어본다.

▲최광식 고구려연구재단 이사 = 고구려 유적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중국이 고구려를 중국사의 일부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 우려되는 바가 크다. ‘일사양용론(一史兩用論)’이 공공연하게 대두될 수 있다. 예컨대 고구려사 하나가 한국과 중국 모두의 역사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자료도 더 모으고, 고구려에 대한 연구도 더 많이 해야 한다.

세계유산이 되면 개방이 뒤따라야 하는 만큼 북한 학자들과 꾸준히 접촉하고, 중국 사회과학원과 공동 학술활동도 벌일 방침이다. 또 세계유산은 6년마다 보존상태를 유네스코에 보고하게 돼 있어 남한보다 보존방법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북한을 지원하는 문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고구려사 연구도 재단 내부 연구자뿐 아니라 밖에 있는 고구려·북방 연구자들의 성과물도 적극 포괄할 계획이다. 고구려연구재단(이사장 김정배)은 중국측이 추진하는 동북공정에 대항하기 위해 정부 예산으로 설립됐으며, 첫 사업으로 지난달 30일 총 31개의 공동기획연구와 자유연구 과제를 선정하고 이를 위한 공모 공고를 냈다.

▲서길수 고구려연구회장 = 중국의 역사 왜곡에 대한 학술적 대응 논리를 개발하는 것이 시급하다. 연구회 창립 10주년을 맞아 지난달 29∼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고구려의 정체성’을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는데, 이는 구체적 대응논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발표자와 토론자가 총 310명이었고, 해외 학자가 97명이나 참가한 대규모 학술대회였다.

여기서 몽골, 일본 등 아시아권 학자들이 발표한 논문 중에 중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것이 많았다. 대회에서는 중국 서적, 고조선과 부여 관계 및 시대별 역사관, 조공·책봉 문제, 고고학·유물 등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쐐기를 박을 수 있는 역사 전반 문제가 샅샅이 대두됐다. 그 결과 아시아 전체가 공동 대응하는 논리가 제시됐다.

대응 논리의 큰 틀을 ‘고구려 정체성’이라는 책 속에 담아낸 뒤 영어로도 번역해 국내외에 알릴 계획이다. 고구려연구회에서는 그동안 학술논문집 ‘고구려연구’를 17호까지 발간했고 그 외에도 학술총서,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보고서, 러시아 발해유적 발굴, 해외 역사유적 조사 등의 성과를 얻었다.

▲신형식 백산학회 회장 = 중국의 역사 왜곡을 막기 위해서는 당장 눈앞의 결과를 얻으려 하지 말고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예컨대 중국은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20년 이상 준비해 왔다. 소리소문없이 많은 일을 해낸 것이다. 신중하면서도 학계 전체에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게 중지를 모아 나가야 할 것이다.

고구려 역사가 우리 것이라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고, 한·중 간에 더 이상 나올 것도 없다. 그 충분한 내용이 이미 역사서에 수록돼 있다. 문제는 이들 역사책을 시급히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해 외국에 알려야 한다. 중국과 대응하기 위해서는 번역사업이 긴요하다.

사실상 백산학회는 30년 넘게 매년 3차례씩 ‘백산학보’를 발간하며 중국과 교류했고, 세계 학계에 고구려사를 알려왔다. 당초 백산학회에는 원로 사학들이 대거 참여해 간도 연구와 북방영토 문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논문집도 많이 냈다. 고구려사는 백산학회를 통해 세계 사학계에 전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일보 2004-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