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고구려 역사서 지혜를 배우자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린 제28차 유네스코(UNESCO·유엔 교육 과학문화기구) 세계문화유산위원회는 북한이 신청한 ‘고구려 고분군’과 중국이 신청한 ‘고구려 수도, 귀족과 왕족의 무덤’을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함께 등재하기로 결정했다. 이 결정은 다음의 두 가지 점에서 기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우선 , 고구려의 문화유산이 인류가 보편적으로 향유하고 보존할 만한 역사적·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음이 인정됐다는 점이다. 또한 , 북한과 중국에 있는 고구려 문화재를 유네스코로부터 재정적· 기술적 지원을 받아 보다 잘 보존·관리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중국이 자국에서 개최된 세계 회의에서 북한의 세계문화 유산 지정 신청을 방해하거나 반대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일단 안도하게 된다. 중국의 역사 패권주의에 대해서는 분명히 우리의 목소리를 내야겠지만, 고구려의 문화유산을 보존·관리하고 연구하는 일과 관련해서는 서로 협력하는 자세가 우리에게도 필요하다고 하겠다.

마침 지난달 10일에 고구려연구재단이 다수 국민의 관심과 격려 속에 개원식을 가졌다. 이로써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할 수 있게 됐고, 또 그동안 뒤처졌던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연구가 매우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중국의 움직임에 일일이 반응하고 반대하기보다는 우리 스스로가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로부터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고 그것을 살려가는 일이다. 다음의 몇 가지에 주목할 것을 제안해 본다 .

첫째, 고구려는 5~6세기에 요동의 대평원, 북방의 초원지대, 흥안령의 대삼림지대, 장백·함경·낭림산맥이 엉켜 있는 산악지대 , 한반도 중·북부의 완만한 구릉과 해안지대 등 다양한 자연 환경을 품고 발전했다. 또, 예맥족을 중심으로 거란·말갈·선비· 돌궐·한족 등 다종족을 포괄하는 다민족의 다문화국가를 이뤘다 . 이처럼 다양한 자연환경과 다종족으로 구성된 공동체를 운영한 고구려의 경험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 유일한 것이며, 이는 21세기 세계화 및 다원화 시대를 살아가고 또 통일 한국을 전망하는 우리들에게 있어 소중한 지혜의 보고가 될 것이다.

둘째, 고구려는 세계에서도 가장 많은 고분벽화를 남겼다. 그 고분 벽화들 중에는 생활 풍속이나 의식주 관련 내용도 있고, 귀족 이나 평민들의 모습도 담겨 있으며, ‘사신도’ 같은 추상적인 이념이 형상화되어 있는가 하면, 별자리 등을 통해 우주관을 표현해 내기도 한다. 즉, 오늘날과는 다른 수많은 문화 콘텐츠를 간직하고 있다. 이는 문화 창조의 세기라고 할 수 있는 21세기에 있어서 귀중한 자원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셋째, 고구려는 신라 및 백제와 더불어 예맥족이 중심이 되어 성립시킨 대표적인 고대국가로서 오늘날 한민족(韓民族) 문화의 원형을 발전시켰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 민족문화 정체성의 바탕이 되고 있다. 예를 들면,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 문화 속에는 고구려의 맥적(숯불고기)이나 전국장(戰國漿·청국장의 전신) 같은 식문화와 온돌 같은 주거문화가 바탕이 돼 있다. 고구려의 문화, 특히 생활문화 등에 깊은 관심과 성찰이 요구된다.

넷째, 고구려의 멸망은 색다른 의미를 갖는다.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그 영토와 백성의 일부만이 신라에 통합되었을 뿐이다. 그 결과 만주 및 연해주 일대가 우리 민족의 활동 무대에서 멀어지는 계기가 됐다. 고구려 역사의 이러한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반성적인 접근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이외에도 다양한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의 고구려사 인식은 21세기 통일 한국과 중국 그리고 동아시아의 평화적 번영을 전망하는 가운데 접근돼야 할 것이다.

<이명희 / 공주대 역사교육학 교수>

(문화일보 2004-7-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