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고구려에 힘 쏟는 까닭은

중국은 왜 자국 내 고구려 유적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받는 일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을까. 쑤저우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각국 관계자들이 화제로 삼는 대목이다.

중국은 그야말로 '문화유산 대국'이다. 자금성과 만리장성 등 29개의 유적이 이미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돼 있다. 건 수 만으로 보면 스페인(38개)과 이탈리아(36개)에 이어 3위다.

게다가 추가로 문화유산 등록을 준비 중인 유적지와 자연유산이 51개나 된다. 장기적으로 세계유산 목록에 추천할 또다른 대상도 무려 100여 개. 평범한 국가는 꿈꾸기도 어려운 숫자다.

이 때문에 "중국이 영토 내에 보유하고 있는 유적.경관들을 세계유산 목록에 전부 올리려면 100년도 더 걸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요즘은 세계문화유산에 자국의 유산을 등재하려는 국가가 줄을 서 있어 '1년에 1국가 1건' 지정이 유네스코의 관례처럼 돼버렸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다른 유적들은 제쳐놓고 고구려 문화유산부터 등재를 신청했다. 북한이 2002년 1월 신청하자 부랴부랴 준비에 나서 1년 뒤 신청서를 낸 것이다. 총회에 참석한 한국측 관계자는 "중국 대표단은 속내를 이야기하지 않지만, 고구려 역사를 자국사에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있지 않겠느냐"며 "북한이 먼저 신청한 데 자극받았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른 관계자는 "많은 한국인들이 중국 동북 3성을 여행하면서 '만주는 우리 땅'이라고 말하고 다닌 데도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문화유산은 글자 그대로 '인류의 유산'이지만, 그 배경에는 어쩔 수 없이 '국가'와 '민족'이 끼어들 수밖에 없는 듯했다.

(중앙일보 2004-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