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유적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역사 논쟁 가열

북한과 중국이 각각 신청한 고구려 유적이 30일 세계문화유산에 함께 등재될 예정이지만 고구려 역사 논쟁은 한층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가 중국 장쑤성 쑤저우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북한과 중국은 상대국가가 신청한 고구려 문화유산의 세계유산 등재에 찬성하기로 했다.

등재 심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도 올초 북한과 중국이 신청한 문화유산 등록에 대한 긍정적 판단을 담은 보고서를 이미 제출한 바 있다.

따라서 이날 이뤄질 고구려 유산 심의에서 북한과 중국 영토에 있는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북한, 중국 고구려 유적 세계문화유산으로 동시 등재

북한은 이번 회의에 벽화고분 16기를 비롯해 5개 지역 63기의 고분을 '고구려 고분군'이란 명칭으로 세계문화유산등재를 신청했다.

동명왕릉 주변 고분군과 호남리 사신총 주변 고분, 덕화리 고분군, 강서삼묘, 이밖에 독립 고분 등이다.

중국측은 43건의 유산을 '고구려의 수도와 왕릉 그리고 귀족의 무덤'이라는 제목으로 세계유산등재를 신청해 놓은 상태이다.

중국은 북한과는 달리 태왕릉과 장군총과 같은 무덤 외에도 오녀산성과 국내성, 환도산성 등 수도와 관련된 왕성들을 대거 포함하고 있는게 특징이다.

고분, 벽화, 왕성 등 대거 포함

고구려 유적의 세계유산 등재는 고구려인들의 유산이 특정국가를 뛰어넘어 세계가 누려야 할 가치가 있는 '세계유산'으로 거듭나게 됐다는데 1차적 의미가 있다.

우리 조상들의 문화유산의 가치를 국제적으로 공인받았다는 것이다. 서길수 고구려연구회회장은 "'북한은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을 갖게됐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렇게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 북한의 고구려 유적 세계유산 신청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북한은 지난해 파리 총회에서 고구려 유적에 대해 등재신청을 했지만 만주지역 유사 분묘를 포함한 비교연구와 중국과의 공동등록 등을 이유로 무산된 바 있다.

여기에는 이른바 동북공정이라고 하는 중국의 고구려의 자국역사편입 노력이 작용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북한 처음으로 세계문화유산 갖게 됐다는 점" 큰 의미

이번 세계유산 등재는 공동 등재가 아닌 개별 등재란 점에 주목해야 한다.

개별 등재란 고구려 유적이 그 나라 영토에 있다는 이유로 각 나라가 신청한 것이지 북한과 중국이 고구려 역사를 상대방의 역사로 인정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번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고구려역사 논쟁은 한층 가열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북한은 고구려의 무덤떼만을 등재 신청한 데 반해 중국은 그동안 고구려 유적의 대대적인 보수작업을 벌여 무덤 뿐만 아니라 옛 수도들과 왕성까지 엄청난 규모로 등재신청을 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서길수 고구려연구회 회장은 "고구려사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것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것으로 선전자료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 일부 학자들은 평양성을 비롯한 고분 이외의 북한 고구려 유적을 정비해 세계유산 등재 노력을 기울이는 등 규모의 경쟁에서 중국에 뒤지지 않아야 한다는 주장도 펴고 있다.

세계유산 등재 계기로 고구려역사 논쟁 한층 가열될 수도

이에 앞서 2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는 고구려 유적의 세계유산 등재를 계기로 고구려의 정체성을 조명하는 국제 학술대회가 열렸다.

이 대회에서 우리나라와 일본, 러시아, 터키, 몽골의 학자들은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기 역사라고 얘기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주장을 폈다.

일본 역사학자 후로와따는 중국이 고구려, 백제, 신라를 해동성국이라며 한 나라처럼 취급해놓고 이제 와서 고구려만 중국 역사고 백제, 신라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는 것에 대해 꼬집었다.

아 오치르 몽골 국립역사박물관장은 "칭기스칸의 자손들이 세운 원이 몽골의 역사인 것처럼 고구려 역시 한국의 역사다"고 밝혔다.

아흐메트 타샤을 터키 미마르시난대교수는 "조공 관계는 단지 외교적 관계에 불과하고 돌궐족이 강했을 때는 중국도 돌궐족에 조공을 바쳤다"며 조공관계에 따라 주류, 변방의 역사를 규정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반박했다.

최광식 고려대 교수는 "고려는 건국하면서 고구려의 계승의식을 가지고 국호를 고려로 했고 고구려 시조 동명성왕의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냈다"며 "중국에서 단군과 동명을 위해 제사를 지낸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를 누가 이어받으려 노력했는가가 역사 계승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라는 주장이다.

한편 중국 동북공정의 주역 쑨진지 선양 동아연구중심 주임은 자신의 논문을 보내 "중국이 고구려 영토의 2/3를 계승했고 고구려가 중국으로부터 책봉과 관직을 받는 중국의 지방정부였다"면서 고구려사의 주류가 중국에 귀속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고구려 유적의 세계문화유산 등재 결정을 앞두고 열린 이번 학술대회는 당사국인 한국과 중국이 아닌 제3자의 시각을 통해 고구려가 우리 역사임을 확인한 자리였다.

(CBS 2004-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