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역사 인식 '끝없는 평행선'

북한과 중국의 고구려 유적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재 결정이 임박한 가운데 고구려의 정체성을 둘러싼 한·중 학자간 역사인식의 괴리와 그 이유를 밝히는 학술논문들이 잇따라 발표돼 주목된다.

고구려연구회(회장 서길수)가 28~30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고구려의 정체성'을 주제로 열고 있는 제10회 국제학술대회에서 동북공정의 주역인 쑨진지(孫進己) 선양동아연구센터 주임은 '고구려와 중·한의 관계 및 귀속'이란 논문을 보내와 최근 중국의 고구려 인식이 한국과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재확인시켰다.

쑨진지는 고구려의 토지 2/3와 인구 3/4를 계승한 중국에 대해 고구려의 연고권을 인정하지 않고 한국이 독점하려는 것은 부당하다 고 주장한다.

역사상 로마제국이 절반 가까운 유럽을 점유했지만 오늘날 이탈리아가 프랑스나 영국을 이탈리아의 역사에 써넣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 개념이라는 것.

또 고구려인은 맥(부여)인,한(漢)인과 같은 중국 종족으로 한반도 서북부에서 형성된 고조선인과는 별개의 민족이라고 주장한다.

영토문제에서도 고구려는 중국 땅에서 세워졌으며 고조선의 땅에 진입한 것은 고조선이 멸망한 뒤 400년이나 지난 뒤였다면서 고구려와 고조선의 연결고리를 부정했다.

이밖에도 고구려는 왕을 비롯해 각급 관리들까지 중국 정부의 책봉을 받았다면서 중국 지방정부론을 거듭 주장했다.

이에대해 최광식 고려대 교수는 고구려가 한국사의 일부라는 것은 선입관이 아니라 역사적 사실이라고 반박한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사서에 고구려가 고조선 부여 신라 백제 등 과 함께 기재돼 있다는 것은 고려와 조선이 고구려를 역사적으로 계승했음을 보여준다는 것. 또 고구려가 존속했던 시기 중국측 사서에는 동이전에 기술돼 있고,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에는 고구려에 대한 항목이 없었다는 점도 제기했다.

고조선의 계승과 관련해서도 고려가 국호나 동명왕의 제사를 지내 온 점 등을 들면서 과연 중국에서도 동명왕을 위해 사당을 지어 제사를 지낸 적이 있는지 반문했다.

한편 쑨 주임과 같은 중국 학자의 논리에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현실적 당위론이 더 강하게 작용하고 있어 그 입장을 쉽사리 바꾸기 힘들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지난 24일 부경대에서 열린 동북아시아문화학회 제8회 국제학술대회에서 윤희탁 고구려연구재단 연구원은 '현대중국의 역사인식과 만주관'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중국의 보편적 역사인식은 소수민족들의 분리독립운동을 막고 중국 국민의 결집력을 높이기 위해 애국-매국이라는 이분법적 틀에서만 작용하며 소수민족의 독자성은 중국의 존엄성에 손상을 끼치는 악의 근원으로 암시되고 있다'면서 '소수민족의 역사에 대한 귀속성은 역사적 사실 여부를 떠나 현재적 당위성에 의해 판정 된다'고 밝혔다.

따라서 '중국의 애국주의적 역사관이나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과 같은 보편적 역사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고구려사와 관련된 만주관 역시 바뀔 가능성이 없다'고 전망했다.

(부산일보 2004-6-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