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관, 이대로는 안된다

정치인 접대·엘리트주의·특권의식 등 극복해야

먼저, 크나큰 고통 속에 조국과 인간을 원망하며 저세상으로 떠났을 고 김선일씨의 명복을 빕니다.

이번 비극적인 사건은 김선일씨를 납치하고 잔혹하게 살해한 테러조직이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납치된 후 구출에 실패하기까지의 과정에는 우리 모두의, 우리 사회 전반의 시스템과 구성원의 자세에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책임의 경중을 따질 때 외교부의 책임이 그 어느 때보다 크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외교부의 개혁 방향에 대해 의견을 보태고자 합니다.

외교관들, VIP와 정치인 접대에서 자유로워야한다

외교관들이 적은 인원으로 많은 업무를 하다보니 타국에서 힘들고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또 잦은 근무지 교체로 생활에 일관성이 떨어지고 자녀교육에도 적지않은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먼저 그들이 하는 업무중에서 불필요한 업무를 배제한다면, 본연의 임무에 더욱 충실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인과 정부 고관의 접대와 가이드입니다.

외교관(특히 공관장)의 능력은 현지에서 얼마나 일을 잘하느냐보다, 본국에서 온 VIP를 얼마나 잘 접대하여 인간적인 관계를 쌓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외교부장관을 역임한 사람들 중에 객관적인 업무 능력 보다 공관장 재임시 정치인들과의 관계를 잘 쌓아 장관 된 사람도 적지 않았다는 점은, 그들이 VIP접대에 매달리는 가장 큰 이유가 됩니다.

그러다보니, 외교공관의 정무과 직원들은 1주일에 사나흘은 공항에 나가 고위인사 영접하고 접대하기에 바쁩니다. 우선 이 문제부터 획기적인 개선책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외교관 선발기준을 바꿔야 한다

외무고시를 완전히 폐지하기는 어럽겠지만, 선발시에 인성평가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성 평가가 중요한 이유는, 시험만 봐서는 그 사람이 국가와 사회를 얼마나 생각하는지, 이웃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가령 사회복지기관 같은데서 300~500시간 이상 봉사한 경력을 첨부해야 시험자격을 부여하는 제도 같은 것을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외무고시에 합격하여 근무한 뒤에도 3년 주기로 일선 행정기관의 대민접촉 창구 같은 데서 6개월 정도 순환근무를 하게 해야 합니다. 농촌지역의 면사무소나 중소도시의 동사무소, 노인-여성-아동 복지업무창구 등에서 주기적으로 일하게 하여, 대민봉사의식이 몸에 배이게 해야 합니다.

또 이런 현장 근무시에 해당기관과 민원인의 평가를 받아서 인사에 반영해야 합니다. 현장 근무 평가가 아주 나쁠 경우 과감히 도태시킬 필요도 있습니다.

외부인 채용 범위 넓혀야 한다

아울러 외부인의 채용을 늘릴 필요가 있습니다. 정부가 대사의 30% 가량을 외부에서 발탁하겠다는 안을 발표했지만, 대사 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현지 총영사관이나 정무-경제파트 등에도 외부인의 수혈을 해야 합니다. 현재 일선 대사관의 정무-경제 파트는 비전문가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현지 정보 수집과 분석에 깊이가 없고, 타 기관(은행이나 연구소 기업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기업인들 중에서 현지 경험이 많고 능력있는 사람을 경제전문 인력으로 발탁하는 제도를 도입해야 합니다. 법조인(변호사) 가운데 현지경험이 많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사람은 영사관에서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현지 언어능력과 인맥을 갖춘 유학생들 가운데서도 인재를 선발해야 합니다.

얘기가 조금 빗나가지만, 공무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업무에 소홀하거나 실수를 해도 '잘릴 염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설사 잘못을 해도 감사파트 등에서 축소하거나 눈감아 줍니다. 왜냐하면 모든 공무원이 '잠재적 공범'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최근의 일로, 건설부에서 자동차 번호판 디자인을 잘못하여 이를 다시 교체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 일로 인해 많은 예산이 낭비되었을 텐데, 누구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습니다.

평가-도태 시스템 도입해야

공무원 사회도 일반 기업체와 마찬가지로 정기적인 수직-수평의 평가를 통해 도태시키는 제도를 과감히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 기업에서 6개월 동안 자동차를 한 대도 못판다든지, 1년 동안 건축수주를 한건도 못하는 직원은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거나 심하면 퇴사당합니다.

하지만 공무원은 1년 내내 무사안일로 지내도 잘릴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전국 곳곳에는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도 많지만, 반대로 1년 내내 하는 일도 없으면서 국민세금을 축내는 공무원도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솎아내야 합니다.

속아내는 방법은 외부감사기관의 업무평가와 민원인들의 평가제도를 도입하면 됩니다. 처음에는 민원인에 대한 음성적인 접대 같은 것이 생길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정착될 것입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공무원들은 누구보다 민원인들에게 잘하게 됩니다.

현재 정부가 하는 일을 삼성그룹에 맡기면 3분의 1의 인력으로도 훨씬 잘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만큼 지금 정부가 비효율적이라는 얘깁니다. 더구나 노무현 정부 들어서서 정부 조직은 더 비대해지고 있습니다. 국민 세금도 소리없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습니다.

책임회피, 엘리트주의 극복해야

다시 외교관 얘기로 돌아와서, 외국에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한국 외교관들의 무관심과 귀차니즘, 엘리트주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무시, 업무 떠넘기기, 책임 회피하기 등을 경험 안 해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예를 들라면 얼마든지 들 수 있지만, 인터넷에 적지않게 소개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외교관들이 현지 교민들에 대해 ‘적당주의’와 ‘귀차니즘’으로 대하고 있지만, 자신들이 국가로부터 받는 대우는 결코 ‘적당주의 대우’가 아닙니다. 외국(특히 후진국)에 사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가장 좋은 집에, 가장 좋은 차에, 가장 좋은 학교(자녀들)에, 운전수에, 가정부까지 두고 풍족하게 사는 사람은 외교관들 뿐입니다. 이들이 이처럼 풍족하게, 최상류층의 수준으로 살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이 낸 세금 덕분이지요.

국민세금으로 연간 5000만원을 자녀학비로 내는 외교관들도 있어

중국 베이징에서 2000년쯤 한국학교가 만들어졌을 때, 그곳에 자녀를 입학시킨 대사관 직원은 단 한 명(한국어가 서툰 자녀를 위해 일부러 입학시킴) 뿐이었습니다. 나머지는 대부분 연간 학비가 1만8000~2만달러나 되는 국제학교에 보냈습니다. 자녀 2명을 국제학교에 보낸 외교관도 많았습니다. 그럴 경우 약 4만 달러(약 5천만원)를 1년 학비로 씁니다. 학비의 75~80% 가량을 정부가 보조해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모두 국민 세금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참고 / 북경의 경우, 극히 소수의 대기업을 제외하고 일반 기업체 주재원이나 언론사 특파원들도 이처럼 좋은 국제학교에 자녀를 보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보낸다 하더라도 B급 혹은 C급 국제학교에 보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중소기업체 주재원들, 특히 개인사업가들은 거의 한국학교에 자녀를 보내고, 드물게 특수한 교육목적으로 한족학교나 조선족 학교에 보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교육비와 관련해서도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가령 한국학교가 있는 곳에서는 외교관 자녀들을 한국학교에 우선적으로 보내도록 하고, 만약 국제학교에 보낼 경우 정부 보조비율을 지금의 75~80% 수준에서 30~50% 이하로 낮추어야 할 것입니다. 또는 학비 보조금을 국내 학비를 감안하여 정액제로 하거나 한도를 정하는 것도 방법일 것입니다.

외교관들의 특권의식

외교관들의 특권의식도 큰 일입니다. 외교관들 중에 자기 돈으로 골프를 치는 사람은 아직도 많지 않다고 봅니다. 상당수의 외교관들이 현지 주재 기업인이나 사업가들에게 부담을 지우며 골프를 칩니다. 과거 사회가 투명하지 못하던 시절에는 그런 관행이 묵인됐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공짜 티켓, 공짜 식사, 공짜 관람 등도 사라져야 합니다. 외교관들은 행사 주최자들이 공짜 티켓을 갖다주다보니, 이제는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깁니다. 외교관일수록 교민들이 힘들게 마련한 행사 같은데 돈을 내고 가는 자세를 보여야 할 것입니다. 외교관 부인들도 해당 한인사회에서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멋진 옷 차려입고 외국의 외교관 부인들과 사교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국민에 대한 관심과 봉사일 것입니다.

자국민 이익 끝까지 보호해야 해당국 정부도 존경한다

우리 외교가 강대국의 눈치를 보는 '사대외교'라는 비판을 받는 것은 자국민 보호를 제대로 못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명의 국민이라도 불이익을 받으면 주재국 정부에 끝까지 따지고 사과와 재발방지를 약속받아야 하는데, 우리 외교관들은 '양국관계를 위해 없던 일'로 하는데 선수들입니다.

주재국 정부는 자국민을 끝까지 챙기는 외국 정부를 오히려 존경하고 내심 두려워하지만, 자국민을 무시하는 국가에 대해서는 속으로 경멸합니다.

중국에서 한국 축구팬들이 중국인 츄미들에게 잇따라 폭행을 당한 사건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우리 정부의 대응이 마지못해 하는 것이다 보니, 중국의 대책도 형식적이고 미지근합니다. 만약 한국인들을 폭행한 중국인들을 색출해서 처벌받게 하고(TV화면이나 사진 등으로 찾아낼 수 있음), 관중보호를 제대로 못한 현지 경찰관계자를 문책하도록 한다면, 동일한 사고의 발생은 현저히 줄어들 것입니다. 하지만 중국인들이 이 일로 처벌받았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외교관들이 그동안 어떻게 했으면, 인터넷 댓글에서 '외교관은 통일 후에 북한 외교관으로 전원 교체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겠습니까.

이번 김선일씨 비극을 계기로 우리 외교부가 실로 거듭나는 소중한 계기로 삼았으면 합니다.

그리하여 분단된 작은 나라(인구나 경제력에서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지만)라고 해서 외국에서 괄시받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조선일보 2004-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