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 '역사전쟁' 아시아 전체로 불붙나

'고구려의 정체성' 국제학술대회
몽골·터키등 제3국 학자들, 中 동북공정 비판
"元이 몽골人 정권이듯, 고구려 주체도 한국인"

“고구려가 중국사의 일부가 아니듯이, 몽골족이 건립한 원(元)나라 역시 중국의 역사가 아니다. 칭기즈칸의 후예들이 세운 원 제국은 어디까지나 몽골사의 일부분이다.”(아 오치르 몽골국립역사박물관 관장)

“돌궐(투르크)의 역사를 중국의 변방사로 보는 시각은 잘못됐다. 당당한 독립국가였던 돌궐은 현 터키의 선조이므로 터키의 역사임이 분명하다.”(아흐메트 타샤을 터키 미마르시난대 교수)

고구려사를 중국사에 편입하려는 중국의 ‘신 중화(中華)주의’가 인근 제3국들 역사인식을 불질렀다? 고구려사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역사 전쟁’이 아시아 전체로 확대 조짐까지 비친다. 28~30일 고구려연구회(회장 서길수 서경대교수) 주최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고구려의 정체성’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하는 몽골·러시아·터키·일본 등 제3국 학자들이 중국 인접 민족들과의 비교를 통해 중국이 추진하는 ‘동북공정’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논문을 발표한다.

이들은 “고구려 영토 대부분이 현재의 중국 땅에 있었기 때문에 고구려사는 중국사”라는 중국쪽 논리의 허구성을 짚는 것을 넘어, 북방민족이 중국을 정복해 세운 ‘정복왕조’의 역사가 중국사의 일부라는 전통적인 중국 역사학의 시각까지도 뒤집는 것이어서 주목된다.

‘몽골사에서 본 중국의 원사(元史)’를 발표하는 아 오치르(A Ochir) 관장은 “원 제국은 아시아 대륙의 아주 큰 부분을 차지했으며 중국·만주 등 많은 민족 기원을 가진 백성들을 다스렸지만 누구의 눈에도 원 제국이 몽골인 정권이라는 것을 의심한 바 없다”며 “동아시아와 시베리아 동남부에 큰 영향력을 지녔던 고구려 역시 그 주체가 한국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한다.

또 ‘투르크(突厥)의 대 중국 조공과 책봉의 성격’을 발표하는 아흐메트 타샤을(Ahmet Tasagil) 교수는 “돌궐은 강성했을 때도 중국에 조공을 보냈다고 기록돼 있다”며 “돌궐과 중국 사이의 조공·책봉 관계는 지배와 예속 관계가 아니라 외교적인 관계에 불과했다”고 지적한다. 이는 ‘조공·책봉 관계’를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었다는 근거로 삼는 중국의 시각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것이다. 김위현(金渭顯) 명지대 명예교수 역시 “남송이 금에 대해 매년 세공(歲貢)을 바쳤고, 오대(五代) 시대의 후진(後晋)은 거란에 의해 책봉되는 등 중국의 중원 왕조들 역시 다른 나라에 조공을 바친 사례가 있다”며 “조공·책봉 관계를 중앙·지방정권의 관계로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한다.

비아체슬라보비치(Abaev N Viacheslavovitch) 러시아 투바공화국 투바대 교수는 ‘고대 한국인들과 사얀-알타이 민족들 간의 민족·문화적 관계에 대하여’를 통해 “단군신화나 고구려 주몽의 탄생 신화는 이들 국가가 유라시아 북방 민족처럼 목축을 하는 전사와 사제에 의해 세워졌음을 보여준다”며 “이 민족 형성 그룹은 고대 중국, 특히 중원(中原)과는 아무런 직접적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제3자적 입장에 있는 일본과 미국 학자들의 발표도 주목을 끈다. 후루하타 도루(古徹) 일본 가나자와대 교수는 “당나라 때 중국의 기록들은 ‘해동삼국(海東三國)’이라는 용어를 통해 고구려·백제·신라를 하나의 지역으로 인식하고 있었다”며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 정권이라는 주장은 비(非)역사적인 것”이라고 지적한다. 또 마크 바잉턴(Mark E Byington)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중국의 주장은 현재의 영토 안정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그들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 옳다”고 말한다.

한편 당초 참석하기로 했던 쑨진지(孫進己) 선양 동아연구중심 주임 등 중국 학자 3명의 방한은 취소됐으며, 미리 보낸 발표문에 대한 토론만 이뤄진다.

(조선일보 2004-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