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 간의 인간관계, 외교 성패 좌우한다

대통령도 세일즈맨… 세계관·의사·인식 등 정상간의 개인적 성향 따라 결과 달라져
'동북아 경제중심 국가'는 노 대통령 비전… '목표' 위해 외교에 전념하는 모습 없어

국제화 시대에 정상외교는 이제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다. 더욱이 국제무대에서 경제적 이익을 추구해야 하는 한국과 같은 통상국가에서 정상외교는 더 이상 거창한 의전적인 냄새를 풍기지 않는다. 대통령도 세일즈맨이 되어야 한다는 명제는 이미 국민들의 요구 사항이 됐다.

1970년 정상회담, 동서독 관계 바꿔

전문가의 전유물이었던 외교가 일반인들의 관심사로 전화된 것은 다음의 역사적 사건에서 비롯됐다. 제1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전면전(total war)이었다. 이제 전쟁을 위해서는 한 국가의 국민과 자원이 총동원되어야만 했다. 그런데 그런 무시무시한 전쟁이 비밀외교라는 폐습에서 비롯되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외교는 공개되어야만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게 됐다. 당시 외교의 일반화를 주도한 국가는 물론 미국과 영국이었다.

이어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새로운 외교행태가 부각된다. 종전 처리는 승전 강대국인 미국, 소련 그리고 영국이 사실상 주도했다. 이들 삼국(三國) 정상회담에서 대부분의 주요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카이로회담, 얄타회담, 포츠담회담 등 일련의 주요 회담은 정상외교의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어 1953년 영국의 처칠 수상이 최고위급 회담(a conference on the highest level)의 의미로 정상회담(summit)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이후 정상외교라는 용어 자체가 보편화되기 시작한다.

국가를 대표하며 대외적으로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가지고 있는 최고 지도자간의 접촉을 정상외교라 할 때 정의상 정상회담에서 합의가 이루어진 사안은 당사국들의 최종 외교 결정으로 간주될 수 있다. 따라서 고도의 정치적 판단에 기초한 외교적 결단은 정상외교를 통해서 가장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극도의 보안 유지가 가능하다는 점도 특히 쌍무 수준의 정상외교가 지니고 있는 장점이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정상외교도 인간의 행위라는 사실이다. 정상간의 인간적 신뢰, 세계관의 공유, 원활한 의사소통, 국가 이해(利害)의 올바른 인식과 개인적 조율 능력 등은 정상외교의 성패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 외교의 개인화(personalized) 문제는 정상의 개인적인 능력에 따라 외교적 결과가 상당히 다를 수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다.

주요 정상외교의 사례는 수도 없이 많다. 특히 상황의 극적인 반전에 정상외교는 효험을 보여 왔다. 1970년 동서독 정상회담은 적대관계를 협력관계로 전환시킨 대표적인 예이다. 당시 서독은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었다. 나아가 동독과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과는 외교적으로 접촉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할슈타인 원칙을 당시까지 서독이 고수한 점에 비추어 보면 정상들의 외교적 결단이 얼마나 대단한 것이었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다음으로 1977년 적대관계의 표상이었던 이스라엘과 이집트 사이에 정상회담이 결행됨으로써 두 앙숙의 적대관계가 극적으로 청산된 바 있다.

지난해 6월 3일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G8 정상회담에 참가한 각국 지도자들이 마지막날 일정을 끝내고 사진가자들을 위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로마노 프로디 유럽연합 대표.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 장 크레티앙 캐나다 총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게르하르 슈뢰더 독일 총리, 코스타스 시미티스 그리스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

대외관계에 국가적 명운 걸려

적대관계의 청산 혹은 세력의 재조정 등과 같은 전통적인 외교 논제에 한정되어 왔던 정상외교는 특히 1970년대 들어서면서 경제외교의 중요한 수단으로 부각되기 시작한다. 경제 정상외교는 이미 1950년대 통합을 위한 유럽정상들의 회합에서 물꼬가 터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경제적 상호의존이 심화되고 경제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면서 정상들이 경제외교의 전면에 나서는 경우가 더욱 빈번해졌다. 대표적으로 국제통화, 특히 환율체제에 위기가 도래하자 서방 7개국 정상들의 강력한 의지와 외교적 결단에 힘입어 새로운 국제통화질서가 확립된 적이 있다. 변동환율제를 공식 인정한 1976년의 킹스턴 회의, 외환시장 개입에 있어 서방 경제강대국들의 공조를 도모한 1985년의 플라자회의, 그리고 환율의 안정을 위한 구체 방안이 모색된 1987년의 루브르회의 등은 대표적인 사례이다.

1990년 이후 세계화의 물결이 거세지며 국제무대에서 경제경쟁이 더욱 치열해지자 경제 정상외교는 보다 실무적인 차원으로까지 확대되었다. 경제체제의 변화 등과 같은 무거운 주제를 넘어 정상이 국가의 주요 품목을 직접 판매하는 이른바 세일즈 정상외교가 등장한 것이다. 그 예는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다. 한국의 고속전철 사업자 선정이 임박해지자 당시 경쟁국이었던 프랑스의 미테랑 대통령과 독일의 콜 수상이 외교적 격식에 구애되지 않고 체면도 접어 둔 채 한국을 직접 방문하여 자국 상품과 기업을 위해 세일즈한 적이 있다.

정상외교의 중요성이 확인된 지금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지 않을 수 없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주요 강대국 수뇌들과 수차례 정상외교를 펼친 바 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하면 거치게 마련인 정상들의 상견례 수준을 크게 넘지 못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산적한 외교 및 경제 현안에 대한 가시적인 돌파구가 마련됐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바 없다. 특히 지난해 10월 이후 현재까지 대통령은 정상외교를 접고 있다. 금년 9월께나 러시아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한다.

물론 탄핵정국을 맞아 직무를 정지당했으니 외교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1년 가까운 정상외교 공백은 4대 강국의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및 무역 대국인 한국의 정상이 보일 외교행보는 아니다. 한·미 간의 문제가 있다면 미국에 직접 찾아가 담판 지을 수도 있다. 아무리 미국이라도 우리의 외교 지렛대를 활용하여 따질 것은 철저히 따지고 실리를 챙기는 대통령에 대해 나무랄 사람은 한국은 물론 이 지구상에 아무도 없다.

동북아 경제중심국가로 도약하겠다는 생각은 노무현 대통령의 가장 중요한 경제외교 비전이다. 한데 그 좋은 목표를 위해 대통령이 정상외교를 펼쳤다는 이야기 또한 들어본 바 없다. 취임 초기부터 이 문제를 대통령이 직접 챙기며 경제 정상외교를 펼쳤더라면 이야기는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대통령의 임기가 많이 남아 있으므로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지난해 국정홍보처는 형식,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용건이 있으면 훌쩍 비행기를 타고 가 상대 국가들의 정상을 만나고 문제를 해결하는 실무형 외교관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그린 바 있다. 그대로만 하면 된다. 한국은 대외정치 및 경제관계에 명운을 건 나라다. 대통령이 그런다고 상대 국의 누가 무어라 하겠는가. 국내외적으로 인기만 올라가게 될 것이다.

<김기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주간조선 2004-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