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 “고구려史 재정립 서둘러야”

‘등재만이 능사인가.’ 오는 28일부터 새달 7일까지 중국 쑤저우((蘇州)에서 열리는 제28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 총회에서 북한이 심의요청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유산 목록 등재가 확실시되는 가운데 벌써부터 학계에서 향후 대응과 과제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中 동북공정 계획 치밀 대응” 촉구

모두 53개의 후보 유산을 심사하는 이번 총회에서 북한과 중국의 영토 내에 있는 고구려 유적은 등재가 확실시된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지난 1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렸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세계유산 검토회의에서 양국의 고구려 유적을 각각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권고키로 의결했기 때문이다. ICOMOS의 권고결정은 이변이 없는 한 총회에서 그대로 통과되는 게 관례다.

고구려 고분군이 세계유산에 등재될 경우 북한도 명실상부하게 세계유산 보유국으로 승격하면서 국가이미지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이를 위해 북한은 ‘고구려 고분군’의 장·단기 보존관리 대책과 관광지 개발계획 수립, 모니터링시스템 구축 등 WHC의 요구 기준을 따라야 한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중국과 북한이 각각 요청한 고구려 유적의 규모가 현격하게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등재후의 남북한 및 중국학계의 고구려사 비교연구 문제, 그리고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에 대한 국내의 대응 방안이 과제로 남는다고 입을 모은다.

중국, 고구려수도 전체 등재 추진

우선 양국이 심의요청한 고구려유적의 규모. 북한은 평양의 동명왕릉과 그 주변의 고구려 고분을 포함한 63개의 고구려 고분만을 묶어 신청한 반면 중국은 ‘고구려의 수도와 왕릉, 그리고 귀족의 무덤’이라는 제목으로 등재 심의를 요청해놓고 있다.

북한은 단순히 고분군만 올린데 비해 중국은 고구려 역사도시(왕경) 전체유적을 등재의 대상으로 삼은 것으로, 이는 고구려가 차후에 왕경 전체유적을 다시 등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석굴암·불국사가 먼저 세계유산에 등재된데 이어 경주 도시 전체를 다시 등재해야 했던 것과 비슷한 경우이다.

고구려 건국시기·존속기간 이견

이와 함께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와 맞물려 고구려사 정립을 위한 남·북한, 중국 등 삼국의 비교연구가 큰 과제로 떠오르게 된다. 각국 학계에서 고구려 건국시기·존속기간과 관련해 큰 입장 차이를 보이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여기에 남한과 북한 및 중국의 서로 다른 고구려에 대한 영문표기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학계에서 가장 우려하는 부분은 양국 고구려 유적의 세계유산 목록 등재후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와 관련한 움직임과 국내 학계의 대응자세이다.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사로 편입하려는 큰 틀에서 고구려 유적의 세계유산 목록 등재를 추진해온 만큼 향후 중국 정부의 움직임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최광식 고려대 교수는 “국내에서 중국과 북한의 고구려 유적 동시 등재를 ‘윈윈’의 입장에서 보는 시각이 많지만 결과적으로 중국에 비해 북한이 불리한 게 사실”이라며 “북한 고구려 고분군의 세계유산 등재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동북공정에 더욱 치밀하게 대응할 수 있는 정부 학계 시민단체의 방안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은 이번 총회에 박흥신 외교통상부 문화외교국장을 수석대표로 하고, 최종덕 문화재교류과장, 허권 유네스코한국위원회 교육문화팀장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파견한다.

(서울신문 2004-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