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날에도 막강 고구려에 패배의식

중국 사학자들이 ‘동북공정’ 운운하면서 법석을 떨자 우리 사학계도 이에 대항하기 위해 부산스럽다. 고구려를 역사 속에서 자기네 변방 속국으로 만들려 애쓰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들이 속령주의 사관에 입각해 고구려를 자기네 역사에 편입하려는 진정한 의도를 간파하지 않고 감정을 앞세우며 서둘기만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안시성 전투에서 당나라의 침입을 극력 막아낸 양만춘 성주를 만났다. 그는 가슴이 딱 벌어진 체구에다가 마상궁술에 능한 고구려 무장이었다.

“양성주님, 중국은 왜 이제 와서 고구려를 자기네 속국이라고 억지를 부리는 겁니까?”

“자네 정말 그 이유를 몰라서 묻는가? 만주 벌판은 원래 우리 땅이야. 그게 두려운 거지. 우리가 여기서 세력을 펼쳐 중원(중국의 중심지)을 노린다고 생각해 보게나. 소름이 끼칠 일이지. 역사는 1,400년이 흘러갔어도 그들은 잊지 못하는 거야. 과거조차도 수치스러운 면이라면 현재로 받아들이는 거야. 그게 바로 중국인들의 특징이야. 아직도 그들은 우리 고구려의 찬란한 문화와 강력한 군사력에 대한 패배감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

말을 듣고 보니 고구려는 중국 침략에 적극 대항하였고 속국이 되기는커녕 언제나 당시의 중국을 위협하는 존재였다.

“그러면 중국의 사학자들은 환상 속의 전쟁을 아직도 치르고 있다는 말씀인가요?”

“이를테면 그렇게 볼 수가 있지. 당 태종만 하더라도 3차에 걸친 원정에서 우리를 이기지 못했고 나에게 눈알이 파여 버리는 수모를 당하지 않았는가? 그게 모두 현재 그들이 역사를 왜곡하려는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야.”

양만춘 성주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중국이 역사를 훔쳐 가려는 숨은 의도를 얼마 만큼이나 파악할 수가 있었다.

사실을 재차 확인하기 위해 동시대의 연개소문 장군을 모셨다. 그는 을지문덕 장군과 함께 역사에서 추앙 받는 고구려의 장군이다.

“장군님! 중국이 지금 역사를 왜곡시켜 고구려가 자기네 변방에 있는 속국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 대해 한 말씀해 주십시오.”

장군은 쉰 살이 넘은 나이에도 패기에 찬 표정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는 정치적 통찰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게 다 우리 잘못이야. 통치 능력도 모자라던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답시고 만주 땅을 중국에 갖다 바쳤어. 그때 삼국 전체 영토의 절반이 날아간 거야. 그로부터 얼마 뒤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고구려의 전통을 계승한다 해놓고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어. 과대망상이 지나쳤으나 궁예가 훨씬 진취적이었지. 그리고 고려 말에 이성계는 요동정벌을 보내 놓으니 되레 반역하여 무력정변을 일으키는 계기로 삼았지. 이게 다 후손들 잘못이 아니고 무언가? 우리는 세 번이나 고구려 영토를 회복할 기회를 가졌지만 모두 개인의 정치야망 때문에 좌절되고 말았어. 나는 반도 안에 머물게 된 우리 민족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무거워. 장차 남북이 통일될 때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해.”

장군의 말을 들으며 유쾌한 상상에 빠졌다. 원나라,청나라처럼 만약 우리가 이민족으로서 현재의 중국을 지배하고 있다면 중국의 모든 역사가 우리 것일 터인데….

<김세환 / 대영계연구소장>

(스포츠투데이 2004-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