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中 '역사 영유권' 논쟁 80년대에도 발해史로 一戰

한중 양국의 ‘역사 영유권’논쟁은 고구려사에 앞서 발해사를 두고 이미한 차례 벌어졌다. 한신대 임기환 연구교수에 따르면 1962년 박시형이 ‘발해사 연구를 위하여’를 통해 한국사에서 발해사를 새로 자리매김한 것을 바탕으로 북한 학계는 통일신라를 부정하고 발해와 신라(후기신라)의 병립시대를 설정, 고조선→고구려 →발해→고려로 이어지는 역사서술 체계를 갖추었다. 북한체제의 역사적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고려였다. 이런 가운데 1980년대 들어 중국이 소수민족 정책과 관련해 마련한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바탕, 발해를 ‘당(唐)의 지방정권’ ‘당대(唐代)소수민족이 세운 지방정권’으로 규정하면서 만주지역에 대한 중국사 시대범위를 당대로 끌어 올렸다.

이에 대한 반박은 북한보다는 남한 학계에서 활발하게 이뤄졌다. 남한 학계는 분단 극복과 민족통일 실현이라는 과제를 염두에 두고 ‘남북국시대론’을 전개하는 한편 발해의 종족과 문화에 대한 실증적 연구를 통해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라는 역사인식을 강화했다.

이 논쟁에서는 발해 건국자와 주민 집단의 종족 문제, 책봉_조공 문제, 발해 문화와 고구려ㆍ당 문화와의 연관성 등이 쟁점이 됐으나 양측 민족 개념의 현격한 차이 등으로 조금도 거리를 좁히지 못했다.

중국의 중화주의적 시각이 문제가 된 한편으로 발해를 고구려의 계승국으로만 자리매김해 당시 동아시아의 역동적 상황을 간과했고, 발해 이후 만주지역의 역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을 드러내는 등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한국일보 2004-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