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국 등에 업고 아시아 패권 노려

급변하는 한미동맹… 요동치는 동북아
한·미 틈새 비집고 대북문제까지 '해결사' 자임
美는 日과 밀월… 독도분쟁땐 한국지원 보장없어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는 요즘 북한 문제의 ‘중재자’ 역할로 바쁘다. 최근 미국에서 열린 G8 정상회담 기간에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부시 대통령과 대화를 갈망하고 있다’ ‘북한도 핵프로그램 포기 용의가 있다’는 식의 파격적 발언을 쏟아냈다. 이 같은 ‘활약’에 대해 도쿄 외교가에선 “드디어 일본이 동북아 문제를 놓고 외교능력을 과시하기 시작한 것”이라며 의미 부여를 했다.

그러나 한국 입장에선 북·미 간 대화의 물꼬를 틀 당사자가 일본인 사실이 반갑지만은 않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도 “우리가 미·북 사이 중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결국 요즘 모양새는 일본이 최근 한·미 간 관계가 갈라지고 있는 틈새를 비집고 들어와 ‘영향력 확대’를 꾀한다는 진단이 가능하다.

나아가 일본은 아예 6자회담 등에서 한국과 미국을 조정한다는 자세도 보이고 있다. 이와 관련, 일본 아사히(朝日)신문의 칼럼니스트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씨는 “아마도 한국은 일본이 미국의 부족한 곳을 채워주고 미국의 지나친 행동을 막아주기를 기대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우 복합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평소 본심(音本·혼네)을 드러내놓지 않기로 유명한 일본인들이라 최근 한·미 간 균열에 대한 반응도 매우 신중하다. 마이니치(每日) 신문은 “일본 정부 내에서는 한·미 동맹의 약화가 미·일 동맹의 군사적 돌출을 가져올까봐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고 전했다. 외견상 일본으로선 자칫 한국이 ‘가상적’인 중국과 밀착할 가능성을 우려한다는 얘기인데 속심은 더욱 복잡할 것이다.

일본의 동북아 전략은 무엇인가. 도쿄대 다카하시 데쓰야 교수(사학)는 “부시 행정부 출범에 맞춰 제안된 아미티지 리포트는 일본이 미국의 가장 충실한 군사동맹국으로서 유럽의 영국과 같은 구실을 아시아에서 수행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를 위해 유사법제(有事法制)의 정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헌법 개정 등이 현재 착착 이뤄지고 있다.

한 전직 외교관은 “쉽게 말해 미국을 등에 업고 중국을 견제하면서 아시아에서 맏형 노릇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정부 내 동북아추진위원장으로 임명된 문정인 연세대 교수도 “북한이나 중국의 대한(對韓) 위협론은 과장돼 있으나 일본의 재무장만큼은 예의주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워드 베이커 주일 미대사가 “미·일 관계가 지금처럼 좋은 때가 없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듯 양국 동맹·신뢰관계는 최상이다. 군사적으로도 양국은 동맹을 넘어 아예 한솥밥을 먹는 하나의 군대가 되려고 한다.

그와 정반대로 한·미 관계는 50년 동맹 사상 최악으로 가고 있다. 일본보다 비중이 더 컸던 한·미 군사동맹도 이젠 급속히 흔들리고 있다. 고려대 현인택 교수(정치학)는 “한국과 일본의 대미관계는 완전히 엇박자로 가고 있다”며 “만약 한국이 국제적으로 약해진다면 과거처럼 중국과 일본이 서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각축전을 벌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3월 중·일 간에 영유권 분쟁이 상존하는 동중국해의 센카쿠(첨각·尖閣·중국명 댜오위타오)열도에 중국인 시위대가 상륙했을 때 미국은 “센카쿠 열도는 일본의 행정하에 있으므로 미·일 안보조약이 적용된다”며 중국에 경고했다.

만약 향후 독도분쟁이 일어난다면 어떻게 될까. 한양대 김경민 교수(정치학)는 “앞으로 한·미 관계가 멀어지게 되면 미국이 과거처럼 한국 편을 든다는 보장은 없다”고 말했다.

연세대의 한 국제정치학 교수는 이렇게 경고했다.

“일본은 한반도의 일본 지배를 사실상 용인했던 20세기 초 미·영·일 우호·동맹체제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지금 부시·블레어·고이즈미로 이어지는 3국 우호 체제 속에서 일본이 동북아에서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에 한국은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조선일보 2004-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