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계의 편협된 논리…학문을 열어야만 歷史가 열린다

한국학 서적을 내는 A출판사는 최근 국내 전문가가 쓴 도자기 관련 책을 영어로 번역하기 위해 외국인 교수와 접촉했다가 망신만 당했다. “국제적 기준의 평가는 없고 ‘한국의 미’니 ‘신비한 비취색’이니 하는 추상적 감상만 나열돼 있어 가치가 없다”며 단칼에 거절당했기 때문이다.

결국 A출판사는 영역을 포기하고 외국 학자가 쓴 한국 도자 서적을 새로 기획했다. 출판사 대표는 “우리 것은 무조건 좋다고 하면서 왜 좋은지를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며 “자화자찬에 빠진 국내 학계의 현주소”라고 말했다.

한국 학계가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자국 중심적인 해석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역사학 분야에서 ‘짜맞추기식 분석’은 두드러진다. 한 학자는 “국내의 한 저명 역사학자는 국제 세미나에서 ‘B유물이 무조건 신라 때 것이라고 주장할 테니까 동조해달라’고 부탁한 일도 있었다”고 말한다. B의 제작 연대가 가능한 앞당겨져야 한국이 특정 유물의 발명국이 되기 때문. ‘한국의 영광’을 위해 학자들이 일종의 담합 행위를 한 것이다.

입단속은 집 안에서도 이뤄졌다. ‘B는 고려 시대 것’이라는 주장은 학계에서 아예 묵살됐고 도록에는 논란이 된 유물 자체가 삭제됐다. 주요한 연구 주제가 묻혔으니 이 분야의 학문적 진척은 더딜 수 밖에 없다.

민족 감정이 학술 세미나를 망쳐버린 경우도 있다. 국제학술회의에서 한 한국 학자가 지나치게 감정적 언어로 중국측을 공격하는 바람에 상대가 아예 입을 다물어 버리고 토론 자체가 무산된 것. 참석했던 학자는 “상대의 말을 들을 마음이 없었다면 왜 거금을 들여 외국 교수들을 초청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우물 안 개구리식’ 연구 풍토는 학문의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정당한 평가마저 가로막는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한 교수는 “우리 것이 최초,최고라는 주장은 많은데 다들 국내에서만 떠들고 말아 외국 학자들은 정작 그런 주장이 있는지조차 모른다. 아무도 모르는데 우리끼리 잘했다고 박수치는 우스꽝스런 상황에서 학문이 발전하겠는냐”며 “외국 학자들이 한국학에 매력을 못 느끼는 이유는 이런 폐쇄적 분위기도 한몫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한국과 중국 간에 첨예한 이슈로 떠오른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프로젝트는 우리 학계의 논리 부족과 쉽게 대결로 치닫는 ‘냄비 여론’의 문제점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동북공정은 고구려사를 지방 정권의 역사로 정비하려는 중국측의 시도.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알려지면서 인터넷에는 ‘고구려 수비대 중앙 사령부’ ‘고구려 역사는 우리 것이다’ ‘우리나라 역사 되찾기’ ‘고구려 독도는 우리 것이다’ 등 수십개의 카페가 순식간에 생겨났는데,이중에는 ‘역사 왜곡을 막자’는 소박한 주장도 있었지만 ‘고구려사가 중국 거라니 미친 XX들’식의 욕설도 상당히 많았다.

몇년 전부터 때가 되면 불거지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문제,독도 영유권 문제 등과 뒤섞여 동북공정은 안티 중국,안티 일본론으로 급속히 확산됐다.

여론이 들끓자 정부는 서둘러 외교 채널을 통해 중국 정부에 유감을 표명했는데 학계 일각에서는 분노한 여론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됐는가에 대해 회의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중국이 동북공정을 들고 나온 맥락을 분석하고 대처해야 하는데 마치 역사 전쟁이라도 벌이는 것처럼 흥분해 일을 엉뚱하게 영토·외교 분쟁 쪽으로 비화시켰다는 것이다.

사실 동북공정의 바탕에는 동북 지역의 분열에 대한 중국 정부의 불안감이 깔려 있다. “옛 만주 지역을 방문하는 한국 관광객들이 ‘여기가 옛날 우리 땅이었다’는 식으로 발언해 난감할 때가 많았다”는 여행사 관계자의 토로처럼 한·중 수교 이후 밀려드는 한국인에 대해 중국이 느꼈을 불안감을 감안해야 한다. 이로 인한 조선족 사회의 동요도 소수 민족 문제로 골치가 아픈 중국에게는 고민거리. 동북공정은 흔들리는 소수 민족 사회를 통합시키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한 연구자는 “이렇게 복잡한 사안일수록 외교적 접근보다는 학자들 간의 교류와 논쟁이 더 효과적”이라며 “고구려사에 대해 학계가 충분히 연구 성과를 축적해 놓았다면 학술적으로 상대를 충분히 제압했을 텐데 그동안 고구려사는 북한과 중국에 유적이 흩어져 있다는 이유로 사실상 방치했고,느닷없는 중국측 움직임에 허둥대며 화만 낸 꼴”이라고 말했다.

흥분한 여론은 외교적으로도 부담이었다. 상대만 자극한 채 금세 수그러들고 말았기 때문이다. 외교통상부의 담당자는 “동북공정의 경우 국민의 관심이 중국과의 협상에 힘이 되는 건 사실이지만 지나치게 국수적 반응이 상대를 자극해 대화를 어렵게 한 측면이 있다”며 “국익을 위해서라도 차분하되 지속적인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국민일보 2004-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