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가 강했던 진짜 이유는?

수(隋)의 패배와 수를 계승한 당(唐)의 연속적인 패배는 중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이는 명나라에도 이어졌다. 1488년 2월, 조선에서 표류해 왔던 최부를 접견한 소주의 안찰어사들이 최부에게 "당신 나라에 무슨 장기가 있어 능히 수·당의 군대를 물리칠 수 있었느냐"고 물었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해 조선군이 일본군에게 참패를 거듭하자 명의 관리들은 매우 의아하게 여겼다. "조선이 수·당 이래 강국으로 불렸는데 지금 이처럼 허약해진 이유가 무엇이냐"고

<천하의 중심 고구려>(코리아쇼케이스)의 저자 이윤섭씨는 서문에서 병자호란의 진행과정과 조선 지배층의 대응 양태에 대해 무려 28쪽을 들여 자세하게 서술한다. 중국 역사상 가장 강력한 왕조였던 수·당과 60년간 동북아 패권을 다퉜던 고구려와 그 후예인 조선, 특히 조선 지배층의 극명하게 대비된다.

고구려는 단지 무력만으로 수·당을 비롯한 역대 중국 왕조와 다퉜던 것은 아니다. 기본적인 무력외에 주변 다른 국가나 세력을 상대로한 적절한 외교, 내부 개혁 등이 어우러져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병자호란 때 조선의 지배층은 아무런 대책이 없었다. 특히 야만족인 여진과의 평화를 반대했던 많은 관리들은 '척화'라는 이데올로기만 있었을 뿐 아무 전략과 전술도 없었다. 1637년 청 태종은 인조에게 보낸 국서에서 아무런 대책없이 만 백성을 사지로 몰아넣었다고 조롱했다.

저자는 '고구려 고려 지배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와 '조선시대 지배층의 편협한 세계관'으로 대비시킨다.

고구려는 개방적인 다민족 국가

이런 시각은 이미 단재 신채호에게서도 보였던 것이다. 단재는 고구려의 강인한 상무정신과 자주독립 정신을 찬미했지만 조선 시대 지배층에게 대해서는 조소를 퍼부었다. 단재의 시각에 '조선시대'는 한 민족사의 암흑시기에 불과하다.

'천하의 중심 고구려'의 저자 이윤섭씨의 시각도 이와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편협한 민족주의 또는 국수주의로 비판하는 시각도 있으나 이는 잘못이다. 특히 일부 학자들 가운데는 고구려 등에 대한 강조가 1980년대 초반 군사정권이 '민족의 웅비'를 내세우며 현실의 독재정치를 회피하려는 수단으로 기획됐다고까지 주장한다.

그러나 강대국인 역대 중국 왕조에 맞서 민족의 독립을 유지했던 고구려와 명나라에만 의존하며 중국의 변방으로 급급하게 살았던 조선을 비교하는 역사 공부는 결코 현실 도피가 아니다.

고구려의 강성과 조선의 나약함에서 우리는 한국 사회의 친미 일변도의 외교 정책이 어떤 화를 부를 것인가를 미리 짐작할 수 있다. 다양한 나라와 외교관계를 수립하고 필요에 따라 중립외교를 펼쳤던 고구려와 명 나라에 대한 일방적인 사대 외교를 펼쳤던 조선의 운명은 현재 한국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고구려가 강했던 것은 단지 무력이 셌기 때문만은 아니다. 고구려는 주변 여러 민족과 활발한 교류, 이민족의 문화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 그리고 이들과의 융합을 통해 발전했다. 역사상 큰 제국은 모두 이러한 모습을 띠고 있거니와 현재 세계의 패권 국가 미국도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린다.

주변 나라에 대한 자세한 서술

중국의 동북공정이 공개된 뒤 국내에서는 고구려 '붐'이 일었다. 많은 책이 쏟아졌다. 그러나 어떤 책들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다. 반대로 어떤 책은 너무 대중적이어서 정밀함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다.

'천하의 중심 고구려'는 쉬운 문체로 고구려 건국부터 발해의 멸망까지 만주지역을 장악했던 한민족의 역사를 통사식으로 서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일반적인 서술 외에 동북아시아 전체 역사에서 고구려가 차지하는 의미를 충분하게 분석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와 유연, 돌궐, 흉노, 토번, 거란 등 주변 이민족들의 활발한 교류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고 있으며 충분한 그림과 도표를 사용해 일반인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또 수나라 및 당나라가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그들 내부의 사정에 대해서도 많은 설명을 해놓았다. 예를들어 당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하게 된 배경 가운데 하나로 당 왕조 내부의 권력투쟁과 연결시키는 설명이 돋보인다.

저자인 이윤섭씨는 원래 학부 때 역사를 전공한 것은 아니다. 지난 1989년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쉽지만 깊이 읽은 한국사>를 이미 냈으며 <오사마 빈 란덴> <베이루트에서 예루살렘까지> <대중의 미망과 광기> 등을 번역했다.

이화여대 주철환 교수(전 MBC PD)는 "1980년대 후반 '퀴즈 아카데미'를 연출할 때 만난 이윤섭씨는 7주 연속 우승을 할 정도로 문제를 귀신같이 맞혔다"며 "그러나 문제를 맞힌 뒤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등 모습과 말투가 유별났던 엽기적인 인물로 그를 기억한다"고 저자를 소개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2004-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