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땅 우리魂 영토분쟁 현장을 가다] <9>동북공정은 간도공정

《‘멈춤(VISITOR STOPS)’. ‘사진촬영 금지(NO PHOTOS)’. 군사시설에나 어울릴 만한 문구가 1.6m 높이의 철책에 걸려 있다. 유적 안내문도 철책 안쪽에 있어 읽을 수가 없다. 높이 6.39m의 광개토대왕비는 그보다 수십m 안쪽에 있다. 비석 주위에는 360도 회전하는 감시 카메라가 가로등처럼 곳곳에 서 있다.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 5세기 초까지 400여 년 간 고구려의 수도인 국내성이 있던 이 곳의 2004년 풍경이다. 철책을 기웃거리고 있으니 24시간 교대로 이곳을 지키는 경비원 두 명이 군견과 함께 나타났다. 이들은 “안에 들어가려면 정부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중앙정부 지시로 지난해 11월 폐쇄

경비원들을 피해 광개토왕비에서 200m 정도 떨어진 태왕릉(太王陵)으로 갔다. 철책과 감시카메라는 있었지만 경비는 없는 것 같았다.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자 한 노인이 다가와 “사진을 못 찍는 곳”이라고 경고했다.

인근 장군총(將軍塚) 관리인에겐 “돈을 낼 테니 안에 들어가 가까이서 보게 해 달라”고 협상을 시도해 봤다. 관리인은 “그러면 좋겠는데 카메라가 있어서 관광객을 들여보내면 위에서 사람이 나온다”며 난색이다.

중앙정부에서 지난해 11월 지안시에 폐쇄를 지시하는 공문을 내려 보내기 전까지는 무덤 앞까지 일반관람을 허용했다고 한다. 고구려 유물을 모아놓았다는 지안박물관에는 아예 입구에 ‘본관 수리중임, 참관 사절’이라는 한글 팻말이 세워져 있다.

●박물관 출입까지 막는 사복경비원

입구에서 기웃거리자 제복 차림의 경비원 2명과 사복 차림의 경비원 1명이 험악한 기세로 다가왔다. 취재팀이 “왜 못 들어가느냐”고 묻자 그들은 귀찮다는 듯 “난방 물통이 터졌다”고 말했다.

지난해 10월 리모델링 공사를 마친 박물관의 시설 고장이 이해되지 않았다. 박물관 출입까지 통제하면서 지안 일대의 고구려 유적에 대한 세계문화유산 등록 신청을 왜 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이 같은 고구려 유적에 대한 개 보수 및 경비 강화는 2002년 2월부터 중국이 추진하고 있는 ‘동북변강사여현상계열연구공정(東北邊疆史與現狀系列硏究工程)’이라는 이른바 ‘동북공정’의 일환이다.

●광개토왕비의 방탄유리도 동북공정 일환

동북공정은 중국 국무원 산하 사회과학원 직속기관인 ‘변강사지연구중심(邊疆史地硏究中心)’에서 추진하고 있는 국가적 학술프로젝트로 공식적으로는 중국 둥베이(東北)지방의 역사 지리 민족문제 등에 대한 연구를 표방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은 2003년부터 지안시와 환런(桓仁) 일대의 고구려 유적에 대해 대대적인 발굴과 복원 작업에 착수했다. 광개토왕비를 둘러싸는 방탄유리 비각을 설치하고 국내성 터와 광개토왕비 부근의 민가를 철거한 것도 그때 일이다.

왜 중국 최대의 연구기관인 사회과학원과 지린(吉林) 랴오닝(遼寧) 헤이룽장(黑龍江) 등 동북 3성의 행정조직 공산당조직 관련연구기관이 총동원돼 고구려사를 연구하는 것일까. 중국 정부가 이 프로젝트에 막대한 예산을 지원하는 이유는 뭘까.

●동북공정 80% 근현대사 연구에 집중

동북공정의 선정과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동북공정은 2002년에 27개, 2003년에 15개의 연구과제를 공개 선정했다. 그 중 2002년 과제의 12개, 2003년 과제의 9개가 북한과 중국의 국경 즉 조중(朝中)변경문제와 직 간접적으로 관계가 있다.

특히 국가문서보관소인 베이징의 제1당안관과 동북3성이 참여해 변경 관련 사료를 정리하고 있다. 번역과제도 변경문제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포항공대 박선영 교수는 “동북공정 역량의 70∼80%가 근 현대사에 집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래서 고구려사까지 중국사에 귀속시키려고 하는 동북공정은 한반도 통일 후 간도 영유권 문제나 소수민족 분리독립 문제가 제기될 경우에 대비한 사전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국은 1980년대부터 준비해왔다

“북한의 갑작스런 붕괴가 아니라 남북평화통일이 달성되더라도 만주지역은 충격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중국정부로서는 남북통일에 충격을 받은 만주족이 단결하여 분리독립을 요구한다면 실로 심각한 문제다.”(이인철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중국이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훨씬 이전부터 북방변경 문제에 대한 논리 확보를 위해 노력해 온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백산학회 신형식 회장은 “중국은 이미 1985년에 북한의 ‘조선전사’를 번역해 북방변경사에 대한 논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중국이 고조선사 고구려사 발해사를 포함한 동북지방의 역사에 대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한 것은 1990년대. 연구결과를 토대로 중국사회과학원이 동북공정 계획을 중점 검토하기 시작한 것은 1996년이었다.

●2000년에 ‘중국 고구려’라 명명했다

마다쩡(馬大正) 변강사지연구중심 전문가위원회 위원장, 겅톄화(耿鐵華) 퉁화(通化)사범대 고구려연구소 부소장 등이 고구려를 ‘중국고구려’라 명명하고 중국 입장에서 고구려사를 총정리한 것은 2000년과 2001년. 고구려가 중국의 지방정권이자 소수민족정권이라는 개념은 사실상 이때 완성된다.

반면 우리의 대응은 초라하다. 경인교육대 강석화 교수는 “국내에서도 간도협약의 부당성이나 한국의 간도연고권에 관한 연구는 상당히 진행돼 있지만 실제 영토분쟁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전략적 접근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영토 분쟁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더 축적된 연구성과를 갖고 있느냐”라며 “동북공정이 두려운 것은 중국이 많은 돈을 들여서 자국 학자들에게 이런 공부를 시키고 있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스스로 문제를 인정한 셈인데

국내 전문가들은 이제 정부가 중심이 돼 변경문제에 관한 학제간 연구를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장기적인 지원과 투자가 필요한 만큼 기획력과 실행능력을 갖춘 구심기관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선영 교수는 “중국이 간도 문제를 연구하는 것은 역으로 간도 영유권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라며 “독도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고 중요한 땅에 대해 중국과 교섭할 여지가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강조한다.

(동아일보 2004-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