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中최남단까지 영향력 흑치상지는 광시자치구 출신”

백제의 영향력이 랴오시(遼西)지방 등 중국 동해안 지역뿐 아니라 베트남과 연결되는 중국 최남단까지 이르렀을 가능성을 제기한 연구논문이 발표됐다.

원광대 소진철 교수(고대정치사·사진)는 ‘백산학회보’ 최근호에 발표한 ‘위서(魏書)의 흑치국(黑齒國)은 어디인가’라는 논문에서 백제 장군 흑치상지(黑齒常之·630∼689)가 중국 최남단 광시(廣西)자치구 출신이라고 주장했다.

흑치상지는 660년 백제 멸망 후 백제 부흥의 기치를 내걸고 봉기해 200여개의 성을 회복했던 장수. 이후 당 고종의 회유로 투항해 토번(티베트)과 돌궐 공략 때 무용을 떨쳤다.

1986년 중국에서 발견된 흑치상지의 묘비명(銘)에는 그가 ‘부여(夫餘)씨로 선조가 흑치(黑齒)에 봉(封)해졌다’는 표현이 나온다. 학계에서는 이후 원래 백제 왕족이었던 흑치상지가 선대에 백제 왕실로부터 흑치국을 봉토로 받으면서 성(姓)도 하사받은 것으로 해석해 왔다.

그렇다면 흑치국의 위치는 어디일까. 흑치상지가 백제 서부인(西部人)이었다는 ‘신당서’와 ‘구당서’의 기록에 따라 그간 국내 학계에서는 사비성(부여) 서쪽으로만 추정해 왔다.

소 교수가 흑치국으로 주장하는 곳은 베트남과 인접한 중국 광시(廣西)좡(壯)족자치구 융닝(邕寧)현 바이지(百濟)향. 2002년 이곳을 현지 답사한 소 교수는 중국 좡족 거주지인 이곳 주민들이 백제라는 지명을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이를 현대 한국어 발음으로 ‘대백제’라 부르고 있다고 증언했다. 또 불과 몇십 년 전까지도 빈랑(檳(낭,랑))이라는 나무열매를 씹는 풍속으로 인해 치아가 검은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도 흑치(黑齒)국과 관련 있다는 설명이다.

소 교수는 “중국측 사서인 ‘양서(梁書)’와 ‘송서(宋書)’에 백제가 진(晉) 말 진평(晉平)군에 진출해 그곳에 백제군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다”며 “진평군은 광저우(廣州) 위린(郁林)군에 속하는데 이는 오늘날 광시좡족자치구에 해당한다”며 흑치국이 광시좡족자치구일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동아일보 2004-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