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과학기술 민족주의’ 노리나

중국이 세계에서 통용하는 기술을 대체할 수 있는 자체 첨단 기술 표준을 잇따라 만들고 있어 과학기술 민족주의를 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30일 AP통신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에서 통용하는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 플레이어 대신 자체적으로 EVD 플레이어를 개발하고 있다. 중국 전자업체들이 DVD 플레이어를 만들면서 원천 기술을 보유한 일본의 6개 기업에 대당 4달러50센트의 로열티(기술료)를 내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와 함께 중국의 다탕(大唐)통신은 정보산업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현재 2세대 휴대폰의 대표적인 기술인 CDMA를 변형한 3세대 휴대폰 개발에 쓰이는 TD-SCDMA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외국 기업들에게 내준 기존의 휴대폰 시장을 새로운 기술 개발로 지키겠다는 의도다.

중국 과학기술부는 첨단 기술 표준 개발 등을 위해 올해 13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히고 있다.

중국이 이처럼 자체 기술 표준을 만들고 있는 것은 민족의 자존심이라는 변수가 크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서방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첨단 기술이 뒤진 탓에 19세기 서구 열강에 당했던 치욕의 역사를 더이상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자성이 중국 정부와 기업들에 깊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인쇄술과 화약을 발명한 중화민족의 위대한 정신을 되살려 중국 자신이 개발한 기술 표준을 가지고 세계와 맞서보겠다는 의도라는 설명이다. 이밖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13억 인구를 가진 방대한 시장이라는 점을 무기로 삼아 다국적 기업들에 더이상 쓸데없는 기술료를 내지 않겠다는 상업적인 고려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중국의 과학기술 민족주의가 자칫 주류 세계와 동떨어진 이류 기술 국가로 계속 머물게 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자체적으로 EVD를 개발했더라도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영화 제작이 뒤따르지 않거나 대다수 DVD를 보지 못할 경우 독자 개발한 기술로 만든 제품이 수출에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향신문 2004-5-30)